서천봉선리유적(舒川鳳仙里遺蹟)은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에 있는 청동기시대~백제시대에 형성된 복합유적이다.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공사 중 처음 확인되어 발굴 조사되었다. 금강 하구로 유입되는 길산천 충적평야를 동으로 마주하는 구릉지 사면에 자리한다. 청동기시대 처음 취락이 형성된 후 원삼국시대에 들어 지역의 중심 묘역으로 발전하였고, 백제 시기에도 그 성격이 유지되었다. 2006년 고속도로에 편입되지 않은 서쪽 구릉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 · 보호하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 시초면 봉선리 581번지 일대 구릉지 동사면 및 정상부에 걸쳐 분포한다. 2003년 서천~공주 간 고속도로 신설 공사 부지에 포함되어 지표 조사 등 일련의 고고학 조사를 거치면서 유적을 인지하게 되었다.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일대는 금강 하구로 흘러드는 기산천에 의해 형성된 길고 좁은 충적평야(沖積平野)를 동쪽에 두고 있는 구릉 지역의 산록에 해당된다. 충적평야는 일제강점기에 저수지가 조성되어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이러한 입지는 농경이 본격화된 청동기시대 이래 취락으로 선호되는데, 이 유적은 평면원 원형의 집터를 특징으로 하는 청동기시대 후기 송국리 유형 시기의 취락으로 시작되었다. 그러한 마을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은 원삼국시대 이래 지역 중심지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유적은 그 유형에 해당된다.
청동기시대에는 송국리 유형 시기의 집터 25기를 비롯하여 저장공 7기, 돌널무덤 13기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유구의 구성은 청동기시대 거점 취락에 어울린다.
원삼국시대에 해당되는 집터는 10기에 불과하지만, 분묘는 주구묘(周溝墓: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서 돌린 분묘) 12기가 확인되었다. 주구묘군은 현재의 읍면 소재지별 1개소 정도 분포하고 있어 지역 중심 묘역으로 볼 수 있다.
백제시대에는 집터 39기, 저장공 93기 등 취락의 기능과 관련된 유구와 함께 굴식 돌방무덤 6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44기, 널무덤 9기 등이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굴식 돌방무덤은 지역 유력자의 가족묘로서 구덩식 돌덧널무덤에 비해 그 위상이 높다.
분묘와 주거지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특이한데, 이 유적의 경우 주거지 수에 비해 저장공이 더 많아 수취와 재분배 등의 기능을 가진 취락으로 볼 수 있다.
유적 서쪽 구릉 정상부 일대는 2014년 처음 확인된 제사유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사유적은 표고 93.9m 정상 서사면 일대 표고 60m 등고선 이상의 고지대에 자리하는데, 면적은 약 25000여 ㎡에 달한다.
유적 외곽은 마치 성벽처럼 낮은 토축 장체를 돌렸고, 서사면 일대는 성토 등 기법으로 정지하여 목곽고, 저장공, 지상 건물지 등 제사용품 창고 시설 및 건물지가 있고, 동쪽 정상부에는 3단으로 추정되는 제단이 조성되어 있다. 출토 유물로 보면 한성기 말 · 웅진기 초에 조성이 시작되어 사비 시기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천봉선리유적은 여러 시대에 걸친 다양한 유구들이 확인되므로 당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6년 11월 6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