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돌날

선사문화
물품
너비가 12㎜ 이하이고, 길이가 너비의 두 배 이상인 매우 작은 돌날.
이칭
이칭
잔돌날, 세석인(細石刃)
물품
재질
용도
결합 도구
제작 시기
후기 구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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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좀돌날은 너비가 12㎜ 이하이고, 길이가 너비의 두 배 이상인 매우 작은 돌날이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고도로 발전된 제작 기술을 보여 주는 석기로서, 뼈 또는 뿔, 나무 등에 장착하여 결합 도구(composite tool)의 날로 이용되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눌러떼기 기술을 활용하여, 크기가 규격화된 좀돌날이 제작되었다.

정의
너비가 12㎜ 이하이고, 길이가 너비의 두 배 이상인 매우 작은 돌날.
형태와 특징

좀돌날은 세석인(細石刃) 또는 잔돌날이라고도 부르며, 프랑스 고고학자 자끄 틱시에(Jacques Tixier)의 분류처럼 너비가 12㎜ 이하이고, 길이가 너비의 두 배 이상인 매우 작은 돌날이라는 정의가 일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좀돌날은 길이 2050㎜, 너비 48㎜로 손으로 잡기에 어려울 정도로 매우 작다.

제작 기술

좀돌날 제작은 후기 구석기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졌는데, 떼기 기술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르게 사용되었다. 유럽과 서남아시아 지역의 경우 이른 시기부터 좀돌날을 제작하였지만, 후기 구석기시대 동안에는 거의 대부분 직접떼기로 좀돌날이 떼어졌으며, 중석기 시대 또는 신석기 시대에 이르러 눌러떼기 기술이 등장한다. 반면, 동아시아 지역은 눌러떼기에 의한 좀돌날 제작이 후기 구석기시대에 이미 광범위하게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눌러떼기에 의한 좀돌날 떼기의 기원은 남부 시베리아, 몽골, 북중국, 한국, 일본, 옌하이저우〔沿海州〕 지역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서남아시아와 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알래스카와 북미 지역으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좀돌날 제작에 있어 눌러떼기 기술의 사용 여부는 좀돌날과 좀돌날 몸돌에 남아 있는 흔적들의 특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좀돌날의 양옆 가장자리와 등면에 남아 있는 능선이 거의 평행을 이루듯이 정연하다. 이 형태는 좀돌날 몸돌의 좀돌날 뗀면에도 동일하게 반영되어 나타난다. 둘째, 좀돌날의 두께가 매우 얇고, 옆면 형태가 직선을 이루고 있다.

셋째, 좀돌날 굽은 매우 작고, 대부분 점굽 모양이다. 넷째, 혹은 발달하지만 짧은 편이고, 굽 뒤쪽에 작은 입술이 존재한다. 다섯째, 뗀각은 대개 80~90° 정도를 이루는데, 간혹 90° 이상인 경우도 있다. 여섯째, 좀돌날의 굽 앞쪽과 좀돌날 몸돌의 뗀면 부분에 좀돌날을 떼기 전 문지르기 기술이 적용된 흔적이 남아 있다.

돌감

좀돌날의 돌감은 주로 응회암, 유문암, 이암, 혼펠스, 혈암, 흑요석 등이 사용되었으며, 수정과 석영도 드물게 이용되었다. 특히 천연유리라고 할 수 있는 흑요석은 작고 세밀한 좀돌날을 만들기에 매우 적합하지만, 돌감 산지가 백두산 지역 등 유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돌감에 비해 한정되어 사용되었다.

현재 30여 곳의 유적에서 흑요석으로 제작된 좀돌날 석기가 확인되었으며, 시기적으로 볼 때 좀돌날 제작 기술의 확산과 흑요석의 사용과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좀돌날 몸돌

좀돌날 몸돌의 형태는 배 모양, 타원형, 삼각형, 사각형, 사다리꼴, 원뿔형, 원추형 등 다양하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옆면이 배 모양 또는 타원형이고, 단면은 대부분 쐐기형이다. 대체적으로 배 모양 · 타원형 · 삼각형 → 사각형 · 사다리꼴 → 원뿔형 · 원추형 순으로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특정 시기 또는 유적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좀돌날 몸돌의 제작 방법을 정리하였는데, 좀돌날 몸돌의 형식 분류 연구가 가장 활발한 일본에서는 유베츠, 오쇼로코, 란코시, 토게시타, 호로카, 야데가와, 히로사토 기법 등으로 세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좀돌날 몸돌의 기술-형태적 특징에 따라 수양개 기법, 석장리 기법, 집현 기법, 하화계리 기법, 상무룡리 기법, 금성 기법, 장흥리 기법 등 유적별로 나누거나, 쐐기형, 배밑 모양, 능주형, 새기개형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사용과 기능

좀돌날은 그 자체로 사용되기보다는 홈이 파인 뼈 또는 뿔, 나무 등에 끼워 결합 도구의 부속품으로 이용된다. 좀돌날은 유럽에서 흔히 확인되는 등손질 좀돌날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특별한 손질 없이 장착되어 사용된 것으로 보이므로 소재이자 그 자체가 도구인 석기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는 듯하다.

쓴자국 분석(use-wear analysis)에 따르면, 좀돌날이 창끝 또는 찌르개의 미늘뿐만 아니라 칼날 등 다양한 기능으로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제작 시기와 대표 유적

마지막 빙하 최성기(Last Glacial Maximum, 24000~20000 BP)에 형성된 첫 번째 토양쐐기를 포함하고 있는 암갈색 점토층에서 좀돌날이 출토되는 유적은 포천 중리 용수재울, 포천 늘거리, 남양주 호평동, 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유적 등 약 20군데이다.

그리고 첫 번째 토양쐐기 포함층의 윗층에 해당하는 명갈색 점토층에서 좀돌날이 확인되는 유적은 철원 장흥리, 홍천 하화계리, 대전 노은동, 임실 하가, 순천 월평, 장흥 신북, 부산 중동 · 좌동, 진주 집현 유적 등 40여 개소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후자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은 좀돌날 제작 기술 전통이 20000 BP 전후로 급속히 확산되었음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장용준, 『韓國 後期舊石器의 製作技法과 編年 硏究: 石刃와 細石刃遺物相을 中心으로』(학연문화사, 2007)
Inizan M.-L., Reduron M., Roche H., et Tixier J., 『Technologie de la pierre taillée』(Meudon: CREP, 1995)
Brézillon M.-N., 『La Dénomination des Objects de Pierre taillée: Matériaux pour un vocabulaire des préhistoriens de langue française』(Paris: CNRS, 1968)

논문

서인선, 「한탄강 중 · 상류 유역 후기 구석기유적의 돌날-좀돌날 제작기술」(『전곡리 윗마을 사람들』, 전곡선사박물관, 2019)
이헌종, 「우리나라의 돌날과 세형돌날문화의 기원과 확산 연구」(『한국구석기학보』 31, 한국구석기학회, 2015)
성춘택, 「세석인 제작기술과 세석기」(『한국고고학보』 38, 한국고고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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