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가마는 숯을 구워내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쌓아 만든 가마이다. 목탄가마 또는 탄요라고도 한다. 숯은 목재가 불에 타서 생성되는데 제철을 비롯하여 난방, 취사, 조명 등 사회 전반에 사용되는 필수품이다. 제철에 필요한 양질의 목탄을 생산하는 백탄요는 피리형가마, 측구부탄요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원삼국시대 후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백탄요보다 훨씬 많은 수가 확인되는 흑탄요는 말각장방형, 타원형, 선형, 역삼각형, 역사다리꼴형, 세장방형 등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숯을 생산하는 가마는 생활과 문화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목재가 불에 타서 생성되는 숯은 세계 각지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었지만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원삼국시대부터 특정 목적의 목탄을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백탄요는 그 형태적 특징에 따라 피리형가마, 측구부탄요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흑탄요보다 이른 시기인 원삼국시대 후기(3∼4세기)부터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흑탄요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말각장방형, 타원형, 선형, 역삼각형, 역사다리꼴형, 세장방형 등 여러 가지 형태가 나타난다. 가장 이른 삼국시대에는 말각장방형이, 고려시대에는 타원형이, 조선 전기에는 선형, 역삼각형, 역제형이, 조선 후기에는 역제형과 더불어 역사다리꼴형과 세장방형의 가마가 성행하였다. 또 화구와 소성실 바닥면의 형태가 처음에는 바닥이 높고 주변이 낮은 형태에서 점차 평탄한 형태와 바닥 가운데가 주변보다 낮은 형태로 변화한다. 연기가 빠져나가는 연도부는 처음에는 수혈식과 터널식이 많지만 고려∼조선시대에는 터널식이 보편적으로 채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숯은 그 용도에 따라 제탄과정에서 기술적 조작에 의해 백탄과 흑탄이 생산된다. 백탄과 흑탄 모두 제탄용 나무를 적재한 숯가마 내부에서 점화-연소-탄화-정련의 과정을 거치는데, 흑탄은 연소과정에서 가마의 화구 및 연도를 밀봉한 다음 가마 안에서 자연적으로 소화된 후 가마 밖으로 꺼내어 만드는 것인데 비해, 백탄은 정련상태의 목탄을 가마 밖으로 꺼내어 재나 흙 등을 덮어 강제적으로 소화시켜 만드는 숯을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제탄 공정상의 차이로 인해 백탄요와 흑탄요의 구조도 다르다.
백탄요는 구릉의 완경사면에 등고선과 나란하게 반지하식으로 만든 것으로, 가마 바닥이 수평을 이루며, 화구와 측벽에 다수의 측구가 설치된 소성실, 연도, 전면 작업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마에서의 목탄제작 공정은 가마 소성실 바닥에 절단한 나무를 세워서 적재한 후, 벽에 나뭇가지 등을 걸치고 흙을 짓이겨 발라서 상부지붕을 덮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연소시킨 다음 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측구부를 개방하여 목탄을 꺼내 작업장에서 재나 흙을 덮어 소화시킴으로써 제탄이 마무리된다. 따라서 측구부는 이러한 제탄 과정에서 만들어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흑탄요는 산의 완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교되게 반지하식으로 만든 가마로서, 전면작업장-화구-소성실-연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체인 소성실의 형태에 따라서 말각장방형, 타원형, 선형, 역삼각형, 역사다리꼴형, 세장방형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이 가마에서의 목탄제작 공정은 반지하식의 굴광을 파서 가마의 기본적인 형태를 만들고 요체인 소성실 벽에 점토나 돌 · 점토를 혼용하여 벽면을 구축하고 그 내부의 소성실 바닥에 자른 나무를 빽빽이 세워서 적재한 다음 나무를 걸치고 진흙을 이겨 발라 지붕을 완성한 후 화구를 통하여 불을 지펴서 연소시킨다. 어느 정도 목탄화가 이루어지면 화구와 연도를 완전히 밀봉하여 가마 내부에서 자연적으로 소화되기를 기다렸다가 가마를 개방하여 목탄을 꺼냄으로써 제탄공정이 마무리된다.
백탄요와 흑탄요 모두 전국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백탄요는 울주 검단리 유적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후 경주 손곡동 유적, 울산 달천리 유적, 청원 송대리 유적, 천안 용원리 고분군, 화성 왕림리 유적 등 많은 유적에서 확인되고 있다. 숯가마의 특성상 출토유물이 전혀 없어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고지자기와 탄소연대측정 결과 대체로 3세기부터 6∼7세기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화성 기안리 유적과 같은 제철유적에서 백탄요가 함께 확인됨으로써 제철에 필요한 양질의 목탄을 생산하였던 가마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목탄의 용도가 제철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활용되었고, 백탄요의 입지가 주로 대규모 고분군 속에 축조되어 있는 특징이 있어 고분 축조에 필요한 목탄도 동시에 공급하였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흑탄요 역시 출토유물이 없어 축조시기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고고지자기와 탄소연대측정 결과, 대체로 6세기 중엽 이후부터는 제탄조업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통일신라 · 고려 · 조선시대를 거쳐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지역과 시기에 따라 형태적 변화를 거치면서 장기간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백탄요보다 훨씬 많은 수가 전국적으로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숯가마의 제작과 숯 생산기술의 발달은 한반도에서 흥망성쇠를 거듭하였던 여러 국가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주민들의 생활양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특히 고대국가의 성립과 발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제철기술 및 철기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숯가마에서 생산된 숯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숯은 금속기 생산 연료로서 뿐만 아니라 난방, 취사, 조명, 생활(방습 · 방부), 의료, 토목, 군사, 고분, 의례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사용되는 필수품으로, 숯을 생산하는 가마의 개량 · 발전에 의한 양질의 목탄 생산은 생활과 문화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