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형주구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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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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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방형으로 에워싸는 주구를 돌리고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개설

방형의 주구 안에 일정한 높이로 성토하고 그 안에 나무널〔木棺〕과 같은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 양식이다. 처음에는 낮은 분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나 후에 유실됨으로써 매장시설도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보통이다. 대체로 초기철기시대, 원삼국시대에 걸쳐 우리나라 서해안을 따라 유행하였다.

연원

방형주구묘(方形周構墓)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전기부터 큐슈〔九州〕지방으로부터 칸토〔關東〕지방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분포했던 묘제로서 일본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무덤양식이다. 중국에서도 비슷한 묘제를 위구묘(圍溝墓)라는 이름으로 주(周)대에서 한(漢)대에 걸치는 무덤이 장강(長江) 하류 지역과 황하 중 · 상류 지역에서 이따금씩 무리를 이루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1990년대 중반 보령 관창리 유적익산 영등동 유적에서 방형주구묘가 발굴되기 시작하여 많은 유적들이 조사됨으로써 서해안 일대에 넓게, 그리고 장기간에 걸쳐 유행했던 무덤 형식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우리나라 방형주구묘가 중국 · 일본의 유사 묘제와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 방형주구묘는 주구로 둘러싼 공간 내부에 널무덤 1∼2기가 매장시설로 축조되며 유물은 매장시설 안이나 주구에서 발견된다. 분구와 함께 매장시설이 유실되는 경우가 많아 유물의 출토 사례가 적어 그 시작과 전개과정을 자세히 알기 어렵다.

이른 시기의 방형주구묘는 보령 관창리 KM-437호나 영광 군동 18호묘와 같이 덧띠토기나 흑색마연호[黑色磨硏壺]가 출토되어 초기철기시대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원삼국시대 방형주구묘로서 상당히 대형화된 것으로 김포 운양동의 방형주구묘가 있는데, 이 무덤은 3세기경에 속한다. 이후 방형주구묘는 분구의 형태가 뚜렷해지고 매장시설을 중복시키면서 묘역을 확장하여 복잡한 형태를 가진 분구묘(墳丘墓)로 발전하게 된다.

의의와 평가

방형주구묘는 무엇보다 우리나라 서해안 일원의 초기철기시대 및 원삼국시대의 문화적인 특징을 강하게 나타내는 무덤 양식이다. 삼국시대로 접어들면서 규모가 크고 복잡한 형태의 분구묘로 발전해 갔으므로 우리나라 고분문화 발전과정 상에서 한 갈래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중서부지역 마한계 분묘의 인식과 시공간적 전개과정」(김승옥,『한국상고사학보』71, 2011)
「전남지방의 분구묘」(임영진,『동아시아의 주구묘』, 호남고고학회, 2002)
「전북지방의 주구묘」(최완규,『동아시아의 주구묘』, 호남고고학회, 2002)
「분구묘의 인식」(이성주,『한국상고사학보』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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