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음·지장보살도는 중국에서 당대(唐代)부터 조성되었으며, 989년 찬집된『지장보살상영험기(地藏菩薩像靈驗記)』에 근거해 두 보살을 방광보살(放光菩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관음과 지장보살을 함께 조성한 신앙적 배경은 중생에게 가장 친근한 두 보살의 현세와 내세구제 공덕을 배가시키기 위해서였다. 관음신앙과 지장신앙의 소의경전에서는 두 보살 모두 현세와 내세를 구제해 주는 공덕을 설하고 있다. 예를 들어『법화경』보문품에서는 현세의 제난(諸難)과 아울러 관음의 삼악도(三惡道) 구제를,『십륜경(十輪經)』서품에서는 지장보살의 현세 이익적인 여러 공덕 내용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관음·지장보살상은 조각으로도 많이 조성되었는데, 발원문을 보면 두 보살상이 주로 망자추선(亡者追善)을 위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두 보살상과 함께 지옥 및 시왕, 정토왕생 장면을 표현한 불상과 불화도 남아 있다. 관음·지장보살상은 단독으로 조성된 외에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약사불과 미륵불의 협시보살로도 나타났으며, 특히 아미타삼존상에서 대세지보살대신 지장보살이 등장하기도 한다.
관음·지장보살도는 중국에서는 원대(元代) 이후 보기 힘든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고려불화 두 점과 조선시대에 조성된 선묘 작품 두 점이 알려져 있다. 또 최근에는 고려불화 한 점이 일본에서 새로 발견되었다.
일본사이후쿠지(西福寺) 소장 고려 「관음·지장보살도」는 백의를 입고 몸을 약간 오른쪽으로 튼 채 두 손을 앞으로 모아 정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과, 두 손으로 보주를 받든 지장보살을 보개(寶蓋) 아래로 나란히 배치하였다. 정면을 향해 함께 서있는 두 보살은, 일본 개인 소장 「아미타삼존도」의 화면 하단 좌우에 서있는 협시보살 도상과 흡사하다. 즉 두 보살의 자세를 비롯하여 지물과 복식이 같으며, 아래로 뻗치거나 위로 구불구불 오그라든 치맛자락 표현 또한 동일함을 볼 수 있다. 일본 미나미호케지(南法華寺) 소장본은 관음과 지장보살을 각각 다른 화폭에 따로 그렸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원래 세 폭의 아미타삼존도로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두 보살은 모두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보개 아래 서있는데, 관음은 가느다란 버들가지와 정병을, 머리에 두건을 쓴 지장보살은 석장과 보주를 잡고 있다. 화면의 좌측 하단 구석에는 “… 郡夫人 …” 명문 흔적이 있어 발원자의 계층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전기 15세기경 제작으로 추정되는 일본 아묘인(阿名院) 소장의 「관음·지장보살도」는 채색 대신 금니로 그린 선묘 불화이다. 두 보살상은 사이후쿠지 소장본과 유사한 형상이지만, 화면 상단에 불좌상 3구가 나타나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리고 조선 전기 금선묘 불화들이 주로 궁궐 여성들의 발원에 의해 조성되었던 점에 비추어, 이 그림 역시 그러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관음·지장보살도는 조선후기에도 제작되어 한 점의 선묘 작품이 국내에 전하고 있었으나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다. 두 보살상은 1751년 조성된 선묘화 「선암사 각황전 아미타불도」의 협시보살 관음·지장 모습과 거의 동일하여, 본 작품의 제작 시기와 화사를 추정할 수 있다. 또한 관음의 보관 중앙에 내영인을 하고 서있는 아미타화불을 유난히 크게 표현하여, 이 그림의 신앙적 배경을 시사해준다.
이와 같이 고려와 조선의 관음·지장보살도는 모두 두 보살을 입상으로 나란히 배치하여 ‘관음·지장보살병립도’라 부를 수 있으며, 도상에서 아미타삼존도의 협시보살 관음·지장상과 친연성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점은 아미타신앙과의 관련성을 짐작케 하고, 중국의 관음·지장보살도가 도상과 화면 구성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과 대조가 된다.
한 쌍의 관음·지장보살상은 협시보살 외에도 다른 주제의 불화에 등장하는데, 망자의 천도 의식 장면을 그린 조선후기 감로도 화면의 상단 우측에 나란히 서있는 관음·지장상을 볼 수 있다. 두 보살은 천도재 의식의 텍스트인 시식의문(施食儀文)에서 망자의 업장을 모두 소멸시켜 극락왕생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어, 관음·지장보살상의 내세구제 신앙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