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면 바탕에 채색. 세로 160.5㎝, 가로 195㎝. 1901년 연화사에서 이루어진 불화 조성 불사에서 일괄 조성된 이 작품은 화기에서 “천수천안관음탱”이라 하였다. 천수관음은 「보문품」관음보살의 위신력과 자비심을 천수천안(千手千眼)의 형상으로 극대화한 보살로, 주된 소의경전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약칭 천수경)이다. 제작에는 한봉 응작을 비롯하여 보산 복주, 청암 운조 등이 참여하였는데 이들 화승은 주로 서울 ·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음보살은 대원광을 배경으로 수중에서 솟아오른 연화좌에 앉아 있다. 상반신 앞의 6비는 합장하거나, 정병과 경책을 들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운 대원광 안에는 천수가 방사형으로 뻗어가듯이 빼곡히 표현되었고, 대원광 바깥으로는 오색 서기를 내뿜고 있다. 따라서 화면 하단에 일렁이는 물결 위로 하얗게 일어나는 포말, 대좌 아래 피어나는 영기와 더불어 관음보살이 방광하며 막 현신한 것 같은 동세(動勢)를 느끼게 한다. 관음의 좌우에는 합장한 선재동자와 홀을 든 용왕이 각각 연판과 연잎에 서서 관음을 예경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재와 용왕이 짝을 이루어 등장하는 것은 조선 후기 천수관음도 도상의 특징으로, 고려본에 이어 당시 수월관음도의 영향을 받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관음의 대좌를 녹색 천으로 덮은 것은 매우 이색적이다. 더욱이 녹색 바탕에 꽃술이 그려진 5엽화문은 마치 대한제국의 문장인 오얏꽃을 연상케하여 주목된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천수관음도에서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고려 천수관음도는 이른 예에 속한다. 조선 전기 1532년에 조성된 일본 지코지[持光寺] 소장본은 고려시대 작품과 유사한 화면 구성을 하고 있다. 이들 작품에 모두 선재동자가 등장하는 점은 중국 천수관음도와 구별되는 도상적 특징으로 수월관음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즉 선재동자가 보타락가산으로 관음보살을 찾아가 법을 구하는 「입법계품」의 장면에서 수월관음도와의 관련성은 관음의 암좌와 아래의 물결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천수관음도는 알려진 예가 많지 않으며 대부분 42수를 표현하고 있다. 42수는 『천수경』에서 부처님이 중생의 여러 이익을 위해 설한 대표적 진언의 40대수(大手)에 2수가 덧붙여진 것이며 천수를 대신한다. 따라서 화제(畵題) 또한 천수관음도 혹은 42수관음도라 호칭하였다. 예를 들어 1865년에 제작된 백련사본은 화면에 42수를 도설하였으면서 화기에는 “천수관음탱”이라 기록하였다. 또 연화사 「천수관음도」와 같이 천수를 표현하고 “천수천안관음탱”으로 부른 예도 있어, 조선 후기 천수관음도의 천수 도상 표현은 두 유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천수관음도가 대부분 천수 대신 간략하게 42대수를 도해한 반면 연화사 천수관음도는 현재 드물게 남아있는 천수를 표현한 작품의 선구적 예로 의의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