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선재동자가 보살도를 구하러 찾아간 보타락가산의 관음보살을 표현한 고려 시대의 불화이다. 수월관음은 고난에 처한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한 이름이다. 관음보살의 자비심은 달이 맑은 물에 나타나는 것과 같다는 데서 ‘수월’이 비롯되었다. 수월관음도는 차츰 자연 속에 편안히 앉아 선재동자의 예경을 받는 모습으로 도상화되었다. 고려 후기에 제작된 수월관음도는 현재 40여 점이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유사한 형식이다. 고려 수월관음도에 사용되는 전형적인 문양의 변형은 관음의 붉은 치마에 있다.
수월관음은 중국에서 당대(唐代) 성립된 관음보살의 한 명호이다. 『법화경』 보문품에는 관음이 고난에 처한 중생들의 간절한 부름에 두루 응하여 구제해주는 공덕을 설하고 있다. 수월관음은 이러한 제난구제(諸難救濟) 관음보살의 자비심은 마치 하늘의 달이 여러 맑은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 곧 수월(水月)과 같다 하여 비롯된 명호이다.
따라서 여러 형식의 관음도를 모두 수월관음도라 할 수 있고, 실제로 각각 다른 화면 구성이면서 “수월관음보살(水月觀音菩薩)” 명문이 있는 작품들이 10세기 중엽 둔황(敦煌)에서 제작되었다. 그러나 차츰 보타락산을 표현한 자연 배경 속에 편안히 앉아 선재동자의 예경을 받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수월관음도라 부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수월관음도 화면은 종래의 존상화적 관음도와 달리 친근감을 주고, 관음을 향해 합장한 선재동자 대신 자신을 투영하며 대자대비 관음보살에 귀의할 수 있어,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널리 유행하면서 관음도의 정형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 후기에 제작된 수월관음도는 현재 40여 점이 알려져 있는데, 대부분 유사한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중국 그림과 크게 구분되는 도상적 특징은 낙산사 창건 설화와 관련 있는 한 쌍의 청죽(靑竹)이 표현되는 점이며, 쌍죽(雙竹)은 중국 관음도의 자죽 세 그루[紫竹三根]에 대비된다. 대나무 도상은 인도 보타락가산의 관음을 중국적으로 표현하면서 나타났으며, 중국과 한국의 관음 진신 상주처인 보타산(普陀山)과 낙산(洛山)을 암시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수월관음도 역시 형식에서 고려 수월관음도의 전형적인 화면 구성을 보여준다. 관음보살은 약간 오른쪽을 향해 풀자리 깔린 암좌에 반가좌자세로 앉아, 아래쪽에 조그맣게 서있는 선재동자를 자애로운 눈길로 내려다보고 있다.
보관에서부터 베일 형태의 투명한 백의(白衣)를 걸친 관음은 왼발을 내려 연화족좌를 딛고 있는데, 그 앞으로 영기(靈氣) 속에 솟아난 연봉오리가 보인다. 연못의 수면에는 또한 산호와 보주, 보석들을 표현하여 이곳이 정토임을 말해준다.
관음의 좌측 배후에는 청죽 두 그루가 곧게 서있고, 우측에는 암좌 끝에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관음 전신을 둘러싼 커다란 원형의 신광은 마치 달처럼 표현되어 수월관음 명호를 연상케 한다.
한편 이 수월관음도만의 특징적인 요소도 찾을 수 있다. 관음의 손과 발바닥에 금니로 묘사한 천복륜문(千輻輪文)은 현존 수월관음도에 나타나있는 예가 10점 정도에 불과하다. 천복륜문은 불법상전(佛法常轉)을 상징하며, 고려 불화의 여래상에 많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려 수월관음도에 사용되는 전형적인 문양의 변형도 관음의 붉은 치마에 보인다. 육각형의 귀갑문으로 가득 채운 바탕 위로 시문한 연화하엽문은 주로 타원형으로 나타나며, 이 그림에서처럼 원형으로 표현된 경우는 몇 작품이 되지 않는다.
또한 관음의 상호에서 보살의 부드러움 가운데 근엄함보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성을 느낄 수 있는 점도 고려 수월관음도에서 흔하지 않다. 아울러 화면 하단에 선재동자가 서있는 연못 기숡을 넓게 배치하여 안정적인 공간감을 주는 것도 다른 작품에서 보기 드문 요소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고려 수월관음도의 전형적인 형식과 표현 전통을 따르면서도 화사 나름대로 변화를 시도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전아하게 느껴지는 화취(畵趣)에다 일부 화면 손상은 있지만 보존 상태도 대체로 양호한 편이어서 고려 수월관음도의 한 전범(典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