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은 석가모니의 40년 설법을 집약한 경전으로, 법화사상을 담고 있는 천태종(天台宗)의 근본 경전이다. 흔히『법화경』이라고 하며, 가장 널리 알려진 대승 경전 가운데 하나이다.
『묘법연화경』은 우리나라에서 406년에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이 한역(漢譯)한 것이 주로 간행·유통되었고, 그 뒤 송나라 계환(戒環)이 본문의 뜻을 쉽게 풀이한 주해본(註解本) 7권이 크게 유행하였다.
이 책은『묘법연화경』전 7권 중에서 권6∼권7을 1책으로 장책(粧冊)한 것이다. 전 7권 중 권6에는 수희공덕품·법사공덕품·상불경보살품·여래신력품·촉루품·약왕보살본사품, 권7에는 묘음보살품·관세음보살보문품·다라니품·묘장엄왕본사품·보현보살권발품 등이 들어 있다. 1면 8행 13자이며, 세로 35.2㎝, 가로 22㎝의 크기이다.
권7이 끝난 뒷부분에는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발문이 있고,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적은 인출 기록이 있는데 글은 베껴 쓴 것이다. 발문에 따르면, 세조의 비인 정희대왕대비(貞熹大王大妃)가 세종·예종·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1470년(성종 1)에 처음 간행하였다고 한다. 강희맹의 인출 기록은 1482년(성종 13)에 덕종의 비인 인수대비(仁粹大妃, 소혜왕후)가 딸 명숙공주(明淑公主, 1455∼1482)의 천도를 위하여 다시 이 목판으로 인쇄하였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1470년에 새긴 목판으로 1482년에 인쇄한 후인본(後印本)이다.
원문만 수록된 이 책은 장막동(張莫同), 최금동(崔今同), 고말종(高末終), 이영산(李永山) 등 일류 각수(刻手)들이 참여하였기에, 판각이 정교하고 정밀하게 인출하여 먹물의 색깔이 진하고 고르다.
14부를 인쇄하였는데, 권6∼7을 합해 장책한 것은 복본으로 전한다. 복본에서 베껴 쓴 강희맹 인출 기록의 서체는 한 사람이 쓴 듯하다. 같은 판본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묘법연화경』권5∼7(보물, 1988년 지정), 현담문고 소장 『묘법연화경』권3∼4, 5∼7(보물, 1993년 지정), 보문사 소장 『묘법연화경』권3∼4(보물, 2014년 지정),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 『묘법연화경』권3∼4(보물, 1996년 지정) 등이 있지만, 인출 시기는 차이가 있다.
이 책은 조선 전기에 왕실에서 불교 경전을 간행한 연유와 사실이 적혀 있는 것으로, 처음 간행하고서 12년이 지난 뒤 다시 인쇄하면서 강희맹의 인출 기록을 베껴 써 넣은 것은 유익한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