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승기신론의기』는 당나라의 법장(643∼712)이 『대승기신론』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이후에 저술된 『대승기신론』 주석서들은 대부분 이 책을 기본으로 삼을 정도로 『대승기신론』 주석서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화엄의 입장에서 『대승기신론』을 설명하고 있으므로 『대승기신론』 자체를 해설한 책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 3권과 신라원효(617∼686)의 『대승기신론소』 및 수나라 혜원(523∼592)의 『대승기신론의소』 2권을 『기신론』삼대소(三大疏)라고 일컫는다.
법장이 이 『의기』를 찬술한 의도는 오교십종판(五敎十宗判)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었고, 그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사종판(四宗判)이었던 것이다. 『의기』가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간행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대각국사 의천의 『신편제종교장총록』의 권제3의 『대승기신론』 아래에는 ‘의기일권(義記一卷)’이라고 수록되어 있으나 다음 행의 ‘소일권(疏一卷)’과 함께 ‘이상지엄술(已上智儼述)’로 되어 있다. 곧 『대승기신론의기』의 찬술자는 동진 때의 역경승인 지엄으로 되어 있다. 『신편제종교장총록』의 『대승기신론』 중에서 법장의 찬술로는 ‘소삼권(疏三卷)’과 ‘별기일권(別記一卷)’이 있다. 이렇게 찬자와 권수로 보면 ‘소삼권’이 ‘의기 3권’에 해당되는 것 같지만 서명이 분명 다르고, ‘별기 1권’ 역시 서명과 권수가 어긋난다. 그래서 이 목록으로만 본다면 의천은 법장이 찬술한 『대승기신론의기』 3권을 입수하지 못하였던 것인지 아니면 목록상의 오류인지 판단하기는 애매하다. 그러므로 『신편제종교장총록』을 통해서는 『대승기신론의기』가 우리나라에 입수된 시기를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고려말기 이전에 전래되어 간행된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판본은 후대 보판의 인출이 보이므로 고려말기 또는 그 이후의 간본으로 판단된다.
상권의 표지는 훼손되었으나 후대에 보수하면서 『기신론의기상(起信論義記上)』이라고 써 놓았다. 상하권 전후표지의 이면에는 “봉위(奉爲) 주상삼전하수만세(主上三殿下壽萬歲)”라는 묵서가 있다. 『대승기신론의기』라는 권수제 다음 행에 “서대원사사문(西大原寺沙門) 법장 술(法藏 述)”이라는 찬자 표시가 있다. 원래 상중하 3권 3책이 완본이나 현존본은 중권 1권 1책이 결본되어 2권 2책만 전한다. 판심제는 『의기(義記)』, 판심의 아래에는 장차가 있다. 전체적으로 서미(書眉)에 주석이 필사되어 있다.
『대승기신론』은 대승불교의 경전이다. 인도의 마명이 저술하였다고 하나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실차난타(652∼710)의 한역본이 전하는데 화엄종, 천태종 등 여러 종파에 영향을 주었다. 『대승기신론의기』는 당나라의 법장이 『대승기신론』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의기』의 해석은 유식법상종의 교리에 따랐다고 알려져 있다.
법장의 『대승기신론의기』는 『대승기신론』 주석서 중에서 후대 표준이 된 해설서이다. 이 주석서가 언제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이 책을 통해 최소한 고려말기 이전에 전래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대승기신론의기』의 우리나라 간본으로는 이 책이 현재까지 공개된 것으로는 유일하고, 후대의 보판이 있지만 고려시대 판각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불교학과 구결연구에 도움을 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