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경』의 해설서 중에서 송나라 야보(冶父)의 송(頌), 종경(宗鏡)의 제강(提綱)에다 우리나라 승려인 기화(己和, 1376∼1433)의 설의(說誼) 및 결의(決議) 등을 뽑아 구결을 달고, 한글로 번역한 5권 5책 중에서 권1, 5 등 2권이다.
이 책의 국역과 인출경위는 권말에 있는 한계희와 강희맹의 발문에 소개되어 있다. 세종이 소헌왕후 심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자(문종)와 수양대군(세조)에게 번역하도록 하였으나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간행을 보지 못하였다. 이후 세조 역시 다른 불서의 간행 때문에 이 일을 완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세조 비인 정희왕후가 학조(學祖)에게 거듭 교정하게 하여 1482년(성종 13)에 간행한 것이다.
『금강경』 본문은 1457년(세조 3)에 주성한 정축자, 삼가의 주석은 1455년(세조 1)에 강희안의 글씨를 본떠 만든 을해자 중자, 구결과 번역문은 을해자 소자를 사용하였다. 반엽에 본문자는 9행 15자, 중자는 11행 21자, 소자는 22행 21자를 식자하였다. 당시 내수사(內需司)에서 300부를 간행하였다고 한다.
동일한 활자본이 서울대학교 가람문고(권2∼5의 4책. 보물, 1984년 지정),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권2의 1책. 보물, 1984년 지정), 장흥 보림사(권1의 1책. 보물, 1984년 지정), 성암 고서박물관(권3,4의 2책) 등에 소장되어 있어 전 5권 5책 모두를 확인할 수 있다.
『금강경』은 조계종, 태고종, 총화종에서 근본경전으로 채택하는 필독의 경전이다. 이 경에 대한 한역 주석만 하더라도 중국 122종, 한국 14종, 일본 61종이 있다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기화의 저술인 설의는 조선 때부터 불교 강원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국어사적인 측면에서는 각자병서가 쓰이지 않는 등 15세기 국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고, 불교문헌학적 측면에서는 국역본 불서간행사업이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계승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주는 자료이며, 서지학적으로는 조선 전기의 금속활자 인쇄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인 점에서 매우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