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년(고종 18) 8월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자 같은 해 9월 9일 상장군(上將軍) 이자성(李子晟)을 수반으로 하는 고려 3군(三軍)이 개경으로부터 출정하였다. 북상하던 고려 3군은 9월 하순경 황해도 황주에 위치한 동선역에서 노숙하던 중 몽고군 기병대 8천 병력의 기습을 받아 첫 전투틀 치르게 되었다. 기병을 주축으로 한 몽고군의 기습공격을 예측하지 못해 군영이 큰 혼란에 빠졌다. 고려군 원수 이자성은 화살에 맞고 장군 노탄은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는 등 3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적 기병대가 다시 우군(右軍)을 압박하자 이때 마산(馬山: 경기도 파주) 초적(草賊)으로 종군한 병사 2인이 활을 쏘아 몽고병을 저격하여 잇따라 쓰러뜨렸다. 이 기세를 타고 초적이 대거 포함된 고려 3군이 몽고군을 반격하여 물리쳤다.
제1차 몽고침입 때 고려와 몽고 사이에서 벌어진 첫 번째 전투이며, 몽고 기병대의 기습을 받았으나 이를 격퇴시킨 고려군의 첫 승전으로서 의미가 크다. 고려 3군은 몽고군의 기습공격으로 인한 첫 위기를 극복하고 북상하여 청천강변 안북부(安北府)에 교두보를 설정하여 몽고군 본진에 대한 지연전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