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 6월 고려가 몽골과의 항전을 결의하고 강화도로 천도하자 사르타이[撒禮塔]가 지휘하는 제2차 침입군이 1232년 8월말 경 고려에 침입하였다. 사르타이는 한강을 건너 광주(廣州)라는 중요한 내륙 거점을 확보하여 남진을 모색하는 한편 강화도로 통하는 수로를 차단하여 강도(江都)조정을 압박하기 위해 광주산성을 공격하였다.
몽골군 본대가 남하하자 광주의 부사(副使) 이세화(李世華, ?∼1238)는 광주산성에 입보하여 급히 성을 수리하고 몽골군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사르타이의 몽골군은 광주산성을 수십 겹으로 포위하고 공격해왔는데 이세화는 성안에 입보한 광주사람들과 함께 방어에 전력하였고, 상황에 따른 대응을 적절히 하여 적군 다수를 살상하고 포로로 잡았다. 전투는 1232년 12월에까지 걸쳤으나 몽골군은 끝내 광주산성을 함락하지 못한 채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처인성(處仁城) 쪽으로 남하하였다.
사르타이의 공격을 막아냈던 광주산성은 신라 문무왕 때 축성되고 고려시대에 일장성(日長城, 혹은 晝長城)이라 불렸던 오늘의 남한산성이다. 광주산성의 공격에 실패한 사르타이는 고려 공격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확정하지 못한 채 처인성을 공격하다가 1232년 12월 16일 사살되었다. 광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세화는 광주부사에서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영전하였으며, 광주민들은 수년 후인 1235년(고종 22)에 국가로부터 요역(徭役) 등을 면제 받았다. 광주산성전투는 제2차 몽골 침입 때 고려 지방민이 정부군의 도움 없이 거둔 승첩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