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4년(고종 41) 고려에 대한 침공을 감행하였던 자랄타이〔車羅大〕는 9월 충주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충주인의 맹렬한 반격으로 이를 포기하고 상주 방면으로 남하 하였다. 몽고군이 충주로부터 대원령을 넘어 남하하자 황령사(黃嶺寺) 스님 홍지(洪之)와 상주 인근 지역민들은 산성에 입보하여 적을 맞아 싸웠다. 같은 해 10월 19일 상주민의 수성전과 기습 출격으로 몽고군은 제4관인이라는 고급 지휘관이 사살당하였다. 아울러 “몽고군 사졸의 죽은 자가 과반”이라 하여, 상주민이 적을 크게 물리쳤음을 전하고 있다.
상주산성은 상주 서쪽 50여 리 지점에 위치한 백화산성(白華山城)이다. 백화산성은 비교적 물이 풍부하고 지리적 측면에서 방어 요건이 좋기 때문에 입보한 주민들이 홍지의 지휘 하에 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고 판단된다. 상주산성전투에서 사기가 꺾인 자랄타이는 이후 경상남도 지역까지 남하했으나 큰 성과를 보지 못한 채 퇴각하였다.
상주산성전투는 몽고군 고급 지휘관을 사살하는 등 몽고군을 크게 격파하였다는 점, 상주 지역민들의 순수한 자위적 항전이었다는 점, 그리고 지휘자가 관리가 아닌 현지의 승려였다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