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대혜어록(大慧語錄)』 30권 중에서 25∼30권에 해당되며, 간략히 『서장(書狀)』이라고 한다. 총 62편의 서신 중에서 59편은 관료 또는 지식인들과 주고받은 것이다.
이 책은 사집과(四集科)의 강원(講院) 교재였기 때문에 많이 간행되었다. 1166년 8월에 송나라 경산(徑山) 묘희암(妙喜菴)에서 간행되었고, 이 판본은 지눌이 활동하던 1200년경에 전래되었다. 이후 1387년(우왕 13)에 번각되었는데 바로 이 책이다. 이색의 발문에 따르면, “지담(志淡)과 각전(覺全)이 이 책을 널리 전하여 후학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자신들이 비용을 대고 새기는 일도 하였다.”고 한다. 이 일을 주도한 지담은 이 해에 역시 이색의 발문을 얻어 『금강반야바라밀경』(일명 『천로금강경』)을 간행한 일이 있었던 승려이다. 당시 왕비인 근비(謹妃)의 지원이 있었는데 이를 미루어 보면 지담은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승려로 판단된다. 이렇게 이들은 여러 책을 계속해서 함께 간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앞의 표지에는 『대혜어록』이라고 적어 놓았다. 권말에는 황문창의 후기와 1166년의 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어 1387년 10월에 한산부원군 이색이 지은 발문이 있다. 발문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법보단경』을 스승으로 삼고, 『서장』을 벗으로 삼도록 하였다(普照國師, 嘗以壇經爲師, 書狀爲友).”면서 이 책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송나라 임제종 승려인 대혜 종고의 편지 글들을 혜연(慧然)이 모으고, 황문창(黃文昌)이 거듭 엮은 것이다. 종고선사는 호가 대혜‚ 시호는 보각(普覺)으로 간화선을 집대성한 인물이다. 이 책의 내용은 당대의 명사 42인에게 보낸 편지 62통이다. 저자의 사상은 주희를 중심으로 한 성리학과 우리나라의 선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혜보각선사서』는 조선시대 강원의 기초자료로 사용된 책이다. 그런 탓으로 이후 계속해서 간행되었는데, 간기가 확인되는 간본만도 약 30종이 확인되고 있다. 이 책은 송본을 저본으로 번각한 판본이다. 결본이지만 이제껏 공개된 것으로는 가장 오래되고 유일한 고려본이다. 불교학과 고려시대의 간본 연구에 도움을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