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종, 영조 때 문신인 박사익의 초상화로 오사모(烏紗帽: 검은색 관모)에 녹색 단령(團領: 관리들이 입던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이다.
박사익은 박동량(朴東亮)의 후손으로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겸지(兼之), 호는 노주(鷺洲), 시호는 장익(章翼)이다. 1712년(숙종 38)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사관(史官)으로 벼슬길에 오른 후 경종과 영조 대에 걸쳐 외직과 내직을 두루 거쳤다. 1727년(영조 3) 병조판서가 되고 금원군(錦原君)에 봉해졌으며, 이후 대사헌, 형조, 예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을 지냈다. 글씨에도 뛰어나 「우의정민진원비」, 「예조참판안적비」 등이 전한다.
「박사익초상」은 오사모에 녹색 단령을 입고 의자에 앉아 얼굴을 살짝 돌려 오른쪽을 보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얼굴은 오른 쪽으로 살짝 돌린 좌안 8분면을 취하고 있으며, 손은 공수 자세를 하고 있다. 얼굴은 밝은 살색으로 칠하고 미간과 이마 등 굴곡진 부분은 약간 붉은색으로 선염하여 입체감을 나타내었다. 옷주름은 주로 선묘로 처리하고 선을 따라 짙은 색을 칠해 음영을 주었다. 표범 가죽 또는 표피에 앉아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숙종 년간 이후 중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표현법으로 주목된다.
화면 오른쪽 위에 ‘금원옹52세상(錦原翁52世像)’이라고 적힌 글로 미루어 이 작품은 박사익이 52세가 되던 해, 즉 병조판서에 제수되고 금원군에 봉해졌던 172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관복에 있는 정 3품 이상의 벼슬을 의미하는 쌍학흉배(雙鶴胸背: 학이 상,하로 마주보는 형태로 수를 놓은 흉배)와 종이품(從二品) 벼슬아치임을 알려주는 학정금대(鶴頂金帶) 역시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 한다.
「박사익초상」은 표피가 깔린 의자, 얼굴 표현에서 보이는 운염법(暈染法: 농담의 단계를 달리하여 표현하는 법) 등 이전과는 다른 18세기 이후 변화된 조선후기 초상화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