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조후시(面朝後市)라고도 한다. 고대 도성의 주요시설을 배치하는 원칙의 하나로 궁궐을 중심으로 행정부서에 해당하는 조정(朝廷)은 그 전면에, 상품생산과 교역활동이 이루어지는 시장은 그 후면에 각각 설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관자와 더불어 중국 고대 도시계획의 원칙을 언급하고 있는 중요한 문헌 가운데 하나인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조후시는 “장인영국 방구리 방삼문(匠人營國 方九里 旁三門) 국중구경구위(國中九經九緯) 경도구궤(經涂九軌) 좌조우사 전조후시(左祖右社 前朝後市) 시조일부(市朝一夫)”라고 하는 문장의 일부로서 종묘와 사직단의 위치를 궁궐의 좌우에 배치하라고 규정한 좌조우사(좌묘우사)와 함께 전조후시는 도성 내 중요 시설인 조정과 시장이 설치될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지칭하고 있는 조(朝)는 궁궐의 주요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인 외조(外朝)의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며 시(市)는 원래 수공업 생산을 통하여 지배계층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공급하는 지역을 의미했으나 후대에는 상품의 생산과 교역이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시장의 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하지만 전조후시(면조후시)의 배치원칙은 역대의 도성에서 그다지 통용되지 않았다. 특히 궁궐을 도성의 중앙에 배치하는 경우보다는 북쪽에 치우쳐 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궁궐의 후면에 시장을 배치하는 것은 불합리했다. 따라서 대부분의 도성에서는 시장을 궁궐의 전면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 역시 도성의 입지는 조선시대의 한양처럼 배산임수의 지형적인 조건을 선택하여 궁궐을 배치한 관계로 이러한 원칙을 그대로 준수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전조의 부분은 원칙을 따랐으나 시장은 궁궐의 동쪽 편에 치우쳐 종로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전조후시를 포함한 『주례(周禮)』 고공기의 도성계획 원리는 동아시아의 고대 도성을 영건할 때 널리 참고 되었던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미쳤다. 현재 주례 고공기의 한글 번역본이 간행된 바 있으며 도시계획분야에서 이와 관련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