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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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알마티(Almty)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한글-러시아어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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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카자흐스탄공화국의 알마티(Almty)시에서 발간되고 있는 한글-러시아어 신문.
개설

소련시기에 발행된『레닌기치』가 소련붕괴 이후 그 영역이 카자흐스탄으로만 한정되면서 제호를 변경해서『고려일보』로 발행되고 있다.

설립목적

소련 말기인 1988년 소련민족우호훈장을 받은 『레닌기치』신문은 소련붕괴 이후 신생독립국인 카자흐스탄에서 1991년 고려인 국제신문 『고려일보』로 개명되었다. 『고려일보』는 『선봉』신문을 기반으로 발전한 소비에트 고려인 신문인『레닌기치』의 뒤를 잇는 신문이 되어, 한반도 역외에서 발행되는 동포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발행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연원 및 변천

소련체제 붕괴이후 『레닌기치』의 뒤를 잇는 신문이 된 『고려일보』는 과거 소련 전체를 관할했던 구독망의 붕괴, 당시 사회 및 경제상황의 악화로 인한 신문 발행 재원 조달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간신문이라는 명칭과는 달리 실제로는 1달에 4회로 감소하였고, 4회 가운데 1회는 러시아어로 발행되었다.

신문 지면의 변화는 소련 말기인 1989년부터 시작되었다. 1989년 3월부터 러시아어지면이 도입되어 신문의 1/4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후 1991년 고려일보로 개명되면서 러시아어 지면은 독립된 신문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주간지 형식으로 발행되었다. 1991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러시아어 지면은 주간지 『고려』로 불리웠는데, 일종의 신문속 신문으로 12명의 직원과 편집국장이 제작에 참여했다. 100호 이상 발행되면서 당시 젊은 고려인 전문 인력들의 신문제작 참여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1990년대초 고려일보사 경영진은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국가로부터의 보조와 예산지원으로부터의 독립을 결정했지만, 이를 이행할 수 있는 재정적인 기반과 여유자금이 부재한 상황이었다. 이후 고려일보는 고려인 독지가 및 기업인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였지만, 주 5회 발행이 주 3회 발행으로 축소되었다. 또한 당시의 경제적인 불안정으로 인해 신문사에 근무했던 한국어 전문인력들 거의 대부분이 당시 카자흐스탄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었던 한국의 민, 관 각종 기관 및 단체에 통역이나 번역가로 진출하면서 신문사의 인적인 기반도 흔들리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경제위기는 소련시기에 발행되었던 거의 모든 국영신문 발행의 중단을 가져왔고, 상당수는 폐간되었다. 또한 소련을 구성했던 개별 공화국들이 독립함에 따라 소련시기에 구축되었던 소련 전체단위의 배포망 붕괴, 지속적인 인플레로 인한 신문 발행비용의 급격한 증가, 구독자의 감소로 고려일보도 존폐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고려일보사에 장비를 지원하게 되면서 컴퓨터를 이용한 편집체제가 시작되었다. 또한 과거 레닌기치의 지역 기자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등에서 개별 국가나 지역단위의 고려인 매체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1994년부터는 소련체제 붕괴로 인한 체제혼란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서 신문 발행 역시 개선의 조짐이 나타나 매호 발행부수는 4,000~5,000부를 기록하게 되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은 지속되었다. 1997년 하반기부터는 A3용지 16면의 고려일보가 12면으로 축소되었고, 카자흐스탄 정부의 보조금 삭감조치로 인해 신문지면은 다시 8페이지로 축소되고, 발행횟수도 월 2회로 축소했다.

1999년말 카자흐스탄 문화부가 모든 국영신문의 사유화 결정을 내리게되면서, 2000년 1월1일부터 고려일보는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가 운영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고려일보는 국가보조금과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의 재정을 기반으로 다시 안정적인 발행체제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이후 지속적으로 신문의 수준과 질의 고양 및 발행부수 증대라는 문제점은 계속되고 있다.

기능과 역할

소련 말기인 1988년 소련민족우호훈장을 받은 『레닌기치』신문은 소련붕괴 이후 신생독립국인 카자흐스탄에서 1991년 고려인 국제신문 『고려일보』로 개명되었다. 『고려일보는』『레닌기치』의 뒤를 잇는 신문이 되어, 한반도 역외에서 발행되는 동포신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발행 역사를 가지게 되었다. 소련붕괴 이후 이 신문은 미약하나마 카자흐스탄 사회에서 고려인 커뮤니티의 동질성과 유대감을 확인할 수 있는 매체로 기능하고 있으며, 소련붕괴이후 이곳으로 진출한 한국기업, 한국인들의 초기공동체 형성, 현지적응과 관련되어 관련정보 매체로 유용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현황

1999년말 카자흐스탄 문화부의 모든 국영신문에 대한 사유화 결정으로 2000년 1월1일부터 고려일보의 운영권은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로 이전되었다. 2000년대 중반에 이르러 고려일보는 국가보조금과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의 재정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발행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한글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층이 축소됨에 따라 구독자가 정체 내지는 축소되는 상황에서 고려인협회 구성원 중심의 구독자 배가운동, 한국정부의 지원, 현지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 등의 구독신청으로 일정수준의 발행부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인터넷 공간을 통한 신문발행도 병행됨에 따라 신문구독의 지리적인 한계도 극복되고 있으며, 카자흐스탄 이외의 국가에 거주하는 독자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변모되었다.

의의와 평가

소련시기의 대표적인 한인신문 『레닌기치』는 소련체제 붕괴와 개별공화국들의 독립으로 소련전체를 관할하던 신문 보급망이 붕괴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문사 본사가 위치한 카자흐스탄을 중심으로 하는 『고려일보』로 신문발행이 이어졌고, 소련시기 『레닌기치』의 많은 독자층을 구성하고 있었던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타슈켄트에 소재한 『레닌기치』지사인력이 중심이 되어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신문인 『고려신문』을 발행하게 되었다.

독립직후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 나타났던 급격한 경제체제 전환 및 시장경제 체제 도입으로 신문발행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독자층이 축소된 상황을 반영하여 기존 한글 전용 신문 발행체계는 『고려일보』는 러시아어-한글 신문 발행체계로,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신문』은 러시아어 발행체계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초반부터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재정 지원을 받는 이른바 독립신문 발행체제 및 한글독자층의 급격한 감소로 신문발행은 주간에서 격주간, 월간 등의 형태로 축소되다가 2000년대 이후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가 지원 및 관할하는 민족신문의 형태로 변화되면서 주간 발행체제로 발행되었고, 신문 발행인력 역시 러시아어를 중심으로 하는 인력으로 변화되는 등, 소련시기와는 다른 형태로 발전하고 있는 고려인사회의 변화가 신문발행체제에도 나타나고 있다.

고려일보의 전신이라 할수 있는 『고려신문』 레닌기치 신문출신 동포 언론인들이 모스크바와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한인 신문을 발행하는 등 고려일보는 여전히 동포 언론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같은 공로로 고려일보는 한국언론재단이 주는 2001년 위암 장지연 언론상을 받기도 했다.

참고문헌

『민족성을 지켜온 신문 고려일보80주년』(고려일보사, 2003)
http://koreilbo.com
집필자
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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