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백문화협회 ()

사회구조
단체
브라질 한인 이민을 담당하였던 단체.
이칭
이칭
한-백진흥주식회사
정의
브라질 한인 이민을 담당하였던 단체.
개설

「한-백 문화협회」는 이종욱 중령이 브라질의 마두레이라(Madureira) 축구팀의 방한을 계기로 1961년 4월 중순 설립한 단체이다. 그런데 이 단체는 세계사격대회를 계기로 브라질에서 김수조와 정인규와의 만남으로 한국에서 브라질 이민 사업을 절차를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주식회사 「한-백 진흥 주식회사」로 체제를 바꾸었다.

사실 이 단체는 한국에서 브라질 이민 희망자를 모집할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단체였으나, 정부가 사단법인「한국이민협회(회장 김동성)」를 발족시킴으로서 그 자격을 잃게 된다. 따라서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 이 단체는 경쟁사였던 「남미공사」와 함께「이민협회」에 흡수되는 형식을 취했다.

브라질에서 김수조에게 이민사업에 대한 가능성을 설득당한 정인규 대령은 귀국 직후 「한-백 문화협회(회장 이종욱)」에 가입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5.16군사 쿠데타 이후 「제대장병동우회」를 결성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군인을 규합한 이민 계획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건의했다. 그리고 정인규는 이민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예편하고, 독자적으로 「문화사절단(총 15명)」을 조직하여 1961년 12월 브라질을 재방문했다.

「한-백 문화협회」는 제2대 회장으로 정인규 대령(그 당시 그는 이미 예편한 상태)을 모셨다. 따라서 그는 브라질 이민을 합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자신이 독자적으로 꾸린 「문화사절단(총 15명)」을 「한-백 진흥 주식회사」라는 명칭으로 바꾸고 운영체제도 사단법인으로 바꾸게 된다.

설립목적

이종욱 중령이 「한-백 문화협회」를 설립한 목적은 브라질이 수도를 브라질리아로 천도한 이후 세계무대에서 ‘떠오르는 별’로 부상하는 것을 보고, 그리고 당시 일본-브라질 관계가 이민으로 끈끈하게 엮어있는 것을 보고, 향후 한국-브라질 관계 개선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원 및 변천

한국 정부가 브라질 정부와 외교협정을 맺은 것은 1959년이었다. 1960년 10월 12일 용산구의 효장공원 개장을 앞두고 대한체육회는 1962년 칠레에서 열리게 되는 제7회 월드컵 대회(5월 30일-6월 17일)대회를 앞두고, 전 대회 우승국인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두레이라(Madureira) 축구팀을 초청했다. 그런데 이 축구팀의 한국 방한은 나중에 브라질 한국 이민의 물꼬를 트는데 기본 역할을 하는 「한-백 문화협회」를 탄생시켰다. 이 단체의 회장은 브라질 축구대표팀의 통역으로 참여한 군인 이종욱 소령이었고, 문화담당자로는 외대 스페인어과 졸업생 배성욱과 정규호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종욱 소령은 그동안 무관시험에 합격되어 중령으로 승진하고 대기발령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그는 군인의 신분으로서 「한-백 문화협회」회장을 지속적으로 맡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 협회가 이민사업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민간단체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정인규 대령이 예편하자 그를 협회의 제2대 회장으로 영입했다. 그것은 정인규 대령은 박정희 대통령 육사 2기 동기로, 군정 최고회의와 유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협회의 활동을 위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인규 회장이 취임한 「한·백 문화협회」는 그동안 이종욱 초대회장이 브라질 정부로부터 초청허가를 받은 「문화사절단」 14명의 명단을 재조정하고 1명을 더 추가하여 브라질 입국 수속을 밟았다. 새로 선정된 15명의 회원 명단은 정인규(단장), 박대진, 윤황선, 김상진, 정수남, 홍관순, 한춘교, 심준열, 박종식, 이종만, 이철희, 김용, 목진태, 최준덕, 고광순이었다. 왜냐하면 이종욱 중령은 브라질 무관 대기발령 중이었고, 박경순과 김달아는 개인사정으로 빠지게 되었으며, 배성욱과 정규호는 병역 미필로 제외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능과 역할

「한-백 문화협회」는 이민사업 초기 한국에서 이민희망자 모집과 이민 수속을 담당하는 역할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좀 더 합법적인 지위를 갖기 위해 체제를 사단법인으로 바꾼 「한-백 진흥 주식회사」로 거듭났다.

현황

오늘날 브라질 이민을 추진하는 단체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한국-브라질과의 교류가 경제적인 측면에서나 문화적인 측면에서 폭발적으로 활발해짐에 따라서, 관련된 정부 기관과 민간 기업들이 브라질에 많이 진출해 있다. 과거 「한-백 문화협회」와 같은 역할을 하는 오늘날의 단체로는 외무부 산하에 「한중남미 협회」와민간 차원의 「한-브라질 협회(KOBRAS)」를 꼽을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한-백 문화협회」는 개인적으로 브라질 이민 사업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조직한 단체이다. 그러나 이민 사업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자 이민 희망자들을 모집하는 비슷한 성격의 단체 「남미공사」와 경쟁해야 했으며 또한 정부와도 대립해야 했다. 왜냐하면 정부주도로 합법 이민 취급 단체인 「한국이민협회(사단법인, 초대회장 김동성)」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정부는 이민 합법 취급단체로 위의 세 단체를 「한국이민협회」라는 이름 하에 통합시켰다 (참고 김수조편).

참고문헌

『브라질 이민 40주년 땅끝까지 복음을』상(남미 크리스챤 신문사 : 상파울로, 2004)
『아마존의 꿈 : 브라질 한국인 이민 40년 회고』(오응서, 남미 동아일보사 : 상파울로, 2004)
『브라질의 한국이민』(전경수, 서울대학교출판부, 1991)
「1960년대 남미 농업 이민 :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손정수,『재외동포사총서』, 국사편찬위원회, 2007)
「삼바 춤을 출 수 없었던 재브라질 한인 교포사회」(최금좌,『국제지역연구』4-2,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학종합연구센터, 2000)
「브라질의 한국이민과 그 전개과정」(전경수,『재외한인연구』창간호, 재외한인학회, 1990)
「브라질편」『한국유이민사』(下)(현규환, 삼화인쇄(주)출판사, 1976)
집필자
최금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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