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제 ()

내포제 시조 / 소동규
내포제 시조 / 소동규
국악
개념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조와 판소리의 창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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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시조와 판소리의 창법.
개설

내포제라는 명칭은 특정한 문화적 창조의 결과물을 이르는 인문지리적 개념으로,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인 예산․당진․서산․홍성 일대의 독자적인 문화를 타 지역 문화와 구별하여 내포제라 이른다.

내포제란 용어는 시조에서 주로 사용하여 충청도 지역의 시조를 내포제시조라 하고, 판소리에서는 경기․충청 지역의 판소리를 중고제라고 하되, 충청남도 지역의 판소리를 내포제라 이르기도 한다. 민요 역시 내포 지역의 민요는 타 지역 민요와 구별되는 특성을 보인다.

연원 및 변천

내포(內浦)는 순수한 우리말로는 ‘안-개’라 하고, 사전적 의미는 ‘바다나 호수가 육지로 후미진 부분’을 뜻한다. 역사적으로 고려 공민왕 때 널리 사용되었으며, 조선 광해(光海) 11년인 1619년 정월에 쓰인 서산의 옛 읍지(邑誌) 「호산록(湖山綠)」에 가야산 주변의 고을을 내포라고 불렀음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후기 대표적인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도 가야산 주위의 10여 고을인 결성․해미․태안․서산․면천․당진․홍주․덕산․예산․신창 등지를 내포로 칭하였다. 즉, 내포 지역은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인 예산군․당진군․홍성군․서산시․태안군․옛 보령군․옛 신창현 지역을 이른다.

이 지역은 지리적․문화적으로 그 외의충청 지역들과 구분되는데, 해양을 중심으로 하는 바다의 지리적 영향과 대륙에서 갈라져 나간 뭍의 지리적 영향을 동시에 구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경기 남부와 같은 생활권으로, 경기도 지역과 동일한 방언권을 형성하고 있어, 부여를 중심으로 한 충청남도 남부 지역이 전북특별자치도와 유사한 문화권을 이루고 있는 것과 구별된다. 이에 충청남도 서북부 지역인 내포 지역의 문화를 흔히 ‘내포제’라 이르며 주변 지역의 문화와 구별하여 지칭한다. 뿐만 아니라, 충청남도 지역의 문화가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점에서, 충청남도 더 넓게는 충청도 지역의 문화를 ‘내포제’라 이르기도 한다.

내용

‘내포제’라는 용어는 시조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지방제 시조인 향제 시조 중 충청도 지역의 시조를 내포제라고 하고, 경상도 지역의 시조는 영제, 전라도 지역의 시조는 완제라고 한다.

시조는 대략 19세기경 지역별로 분화하였는데, 시조가 한양에서 처음 전파된 곳이 내포 지역이며, 충청도 지역 특히 충청남도의 시조를 내포제라 이르는 점에서 충청남도의 시조가 내포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충청남도 내포제 시조는 금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소리와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소리의 두 유파로 나눌 수 있고,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소리는 서판제 시조라고 하기도 한다. 이 두 유파 모두 내포제 시조에 포함되나 그 특징은 조금 차이가 있어, 내포 지역의 서판제 시조가 1943년 이전 내포 지역의 방언으로 기록되었고, 경제시조와 유사하며, 충청인의 기질처럼 느리고, 기교를 부리지 않아 시김새가 발달하지 않았으며, 노래라기보다는 시를 읊는 것에 중점을 두는 점에서 내포제시조의 고형을 보여준다.

‘내포제’라는 용어는 판소리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판소리유파는 흔히 전라도 동편의 구례․남원․순창 등지의 ‘동편제(東便制)’와 전라도 서편인 광주․나주․보성 등지의 ‘서편제(西便制)’ 및 경기․충청 지역의 ‘중고제(中高制)’ 판소리로 나누되, 충청남도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를 간혹 내포제라고 따로 이르기도 한다. 판소리 장르에서 ‘내포제’라는 용어의 사용은 「박순호 소장 「게우사」」에 ‘최석항의 내포제’라는 기록에 근거하는데, 이로써 충청도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 유파가 오래 전부터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포 지역의 대표적인 판소리 창자로는 조선후기 해미 출신의 고수관과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심정순․방진관을 들 수 있다.

현황

내포제 시조는 1992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초대 예능보유자 소동규(부여)는 윤종선(청양)의 제자로, 윤종선은 임철호․유한경 등과 동시대에 서울에서 활동한 시조 명인이다. 소동규가 3년 후인 1995년 타계한 뒤에 그의 후계자 김원실(부여)이 제2대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았고, 김원실이 2008년 타계하고 김연소(부여)가 2010년 7월 제3대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승하고 있다.

현재 충청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는 내포제 시조 이외에, 충남 서북부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시조 유파가 따로 있는데, 이는 위 소리와 구별하여 서판제 시조라고도 한다. 홍성 출신인 이종승에게서 서산의 이문교로 전승되었고, 이어 서산의 유흥복․유병익․홍순범을 거쳐, 역시 서산의 유형곤과 박선웅에게 이어졌다.

내포제 판소리는 현재 뚜렷한 전승을 이루고 있지 못한데, 조선 후기 명창으로 고수관이 있으며,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였던 심정순과 방진관이 있다. 심정순의 막내딸 심화영이 2009년까지 서산에 거주하며 판소리와 병창 및 승무를 전수하였고, 승무는 심화영의 외손녀인 이애리가 잇고 있다.

의의와 평가

내포제에 대한 연구는 축적된 것이 많지 않다. 시조의 경우 오늘날 지방제 시조는 대부분 정경태에 의해 창작된 석암제(石菴制)로 통일되어 있어, 내포제는 물론 영제와 완제 모두 원래의 특성을 제대로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고, 판소리 역시 경기 ․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판소리 유파는 현재 소리 계보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서산․홍성 등지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고, 내포제에 대한 연구 및 복원 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참고문헌

『판소리 중고제 심정순 가의 소리』(신은주, 민속원, 2009)
「심정순 일가의 소리와 내포제 문화」(신은주, 『한국학연구』제35집,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서산지역 내포제 문화의 영역과 역사적 의미」(김헌선 ․ 오정아, 『한국학연구』제35집,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내포제 시조의 전승과 변이」(유대용, 『한국학연구』제35집, 고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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