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서산 출신. 본관은 청송(靑松). 1910∼1920년대 판소리와 가야금병창 ․ 산조 ․ 재담 ․ 풍류 등의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1873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심팔록은 피리와 퉁소의 명인으로, 심정순의 음악은 부친에게서부터 이어진다. 25세 무렵부터 판소리 ․ 잡가 ․ 풍류를 두루 익혔고, 풍류는 가야금 ․ 양금 ․ 단소에 능했다. 1910년 무렵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서울에 거주하면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였고, 1926년 무렵 중풍에 걸려 국악 활동을 중단하였다. 1930년 무렵 병이 악화되어 고향인 서산으로 낙향, 1937년 6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910년 무렵부터 1926년 중풍으로 활동을 중단하기까지, 서울에서 극장무대를 중심으로 한 공연활동과 음반 취입, 경성방송국 라디오방송 활동, 사설 연재 등 활발한 음악 활동을 하였다.
장안사(長安社)에 소속되어, 장안사를 대표하는 스타로 거의 매일 공연을 하였고, 단원들과 함께 순회공연을 다녔다. 1911년과 1925년에는 일본축음기회사에서 판소리와 가야금병창, 잡가, 가야금 독주 음반을 취입하였고, 이동백과 김창룡의 음반에 고수로도 여러 차례 참여하였다. 1912년에는 『매일신보』에 「강상련(심청가)」, 「연의각(흥보가)」, 「토의간(수궁가)」 세 바탕 판소리 사설을 연재하였는데, 이는 현전하는 유일한 판소리 중고제 창본으로서 의의를 지닌다. 1927년 개국한 경성방송국의 라디오방송 시험 방송 기간이었던, 1926년 7월 22일과 8월 5일에 심정순이 두 차례 라디오방송을 한 기록이 발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