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전통 악기를 만드는 공예 기술인 악기장은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본래 악기장은 모든 악기 제작에 능하였으나, 현재는 혁부(革部), 금부(金部), 죽부(竹部), 사부(絲部)로 나눈다. 악기장 가야금은 가야금, 거문고 등 현악기를 주로 제작하되, 가야금 기술이 특히 뛰어난 장인으로, 1995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고수환(高壽換)과 2008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 표태선(表泰先)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악기장 가야금, 고수환은 1998년 1월 9일 지정되었고, 소재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이다. 그는 1950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 남갑진, 이영수 등으로부터 악기 제작 기술을 배웠다. 목재의 마름질에서 줄꼬기 등 악기 제작 공정의 전 과정 기능을 원형 그대로 갖고 있다.
악기장 가야금, 표태선은 2008년 5월 30일 지정되었고, 소재지는 대전광역시 중구이다. 그는 1961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태어나, 19세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김광주의 제자인 김종기와 조대석 선생에게 17년간 가야금 전통 제작 기법을 사사받았다. 현재 대전, 충남권에서 유일하게 전통 현악기의 맥을 잇고 있는 장인으로, 악기 제작의 거의 모든 과정을 수작업에 의한 전통 방식으로 고수하고 있다. 가야금은 물론 거문고, 아쟁, 해금, 양금, 철가야금 등 현악기를 만들며, 1985년 대전에 정착하여 현재 ‘명인국악기’를 설립, 전통 악기 제작과 보급에 힘쓰고 있다. 전수 장학생으로 조카 표영광과 아들 표영빈이 활동하고 있다.
가야금은 보통 오동나무를 사용하여 만드는데, 일반적으로 현악기는 다른 국악기에 비해 훨씬 많은 시간과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가야금 제작 과정은 오동나무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2∼3년간의 자연 건조, 인두질, 다양한 장식 과정을 거치고, 마지막으로 여러 줄의 명주실을 꼬아서 현을 걸고 음을 맞추면 비로소 공정이 마무리된다.
악기를 만드는 장인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이미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되나, 악기장의 존재와 기능 전수에 관한 역사 기록이 없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악기조성청’이라는 독립된 기관을 설치하여 국가에서 필요한 악기를 제작하여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에는 이왕직아악부와 현재의 국립국악원에서 각종 악기의 제작 및 수리 등의 보급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국가 기관의 전속 악기장의 명맥은 끊어졌고, 민간에서의 악기 제작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영세하여 전업으로 하는 이가 거의 없었다. 국악기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악기장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이 조금씩 생겨나게 되자 비로소 1971년 2월 24일에 김광주를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로 지정하였다.
현재 악기장은 국가지정 국가무형유산 및 시도지정 무형유산으로 분류되어 있다. 광주광역시, 대전광역시, 전북특별자치도, 충청북도, 서울특별시, 경기도, 전라남도에서 악기장이 시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그 중 악기장가야금은 전북특별자치도와 대전광역시에서 각 1명이 보유자로 지정되어 있다.
악기장은 전통악기의 주재료인 나무와 가죽, 명주실, 대나무, 쇠, 돌, 흙 등을 이용해 악기를 설계하고 만들어 각 악기가 지닌 특유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기능인이라는 점에서 일반 공예 영역의 장인과 구분된다. 악기장가야금의 문화유산 지정은 전통 방식에 의한 국악기 제작의 맥을 잇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