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약사여래삼불좌상은 약사여래를중심으로 좌우 여래상이 배치되었다. 약사불은 높이가 58㎝로서 좌우 협시불이 각각 52.2㎝, 46.2㎝인데 비해 다소 크게 만들었다. 이들이 원래 삼세불 성격으로 함께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학림사 석조약사여래삼불좌상은 모두 큰 나발 사이로 둥그런 정상 계주와 중간 계주를 표현하였고, 얼굴은 좌우로 넓게 퍼진 모습이며, 신체에 비해 큰 비례를 보인다. 목은 짧아서 삼도가 표현되지 않았으며, 통견의 착의법에 있어 양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은 평행하지 않고 약간 ‘V’자형으로 벌어진 모습이다. 그 사이로 하단부에 내의가 약간 드러나 있다. 수인은 선정인인데, 본존만 그 위에 화문 장식이 있는 약함을 얹었고, 우협시불은 두 손이 옷자락에 덮혀 있다.
불상의 바닥면에는 복장공이 있고, 그 안에서 복장물이 발견되었다. 수습된 유물은 노란색 비단에 싸인 후령통 2점, 1477년에 간행된 『묘법연화경』권4∼7, 조선 후기에 간행된 『묘법연화경』권5, 1531년에 간행된 『비로자나총귀진언(毘盧遮那摠歸眞言)』 2점 등이다. 또한 조선 후기의 다라니가 수습되었는데, 즉 『일체제불전신사리진언범서약초다라니(一切諸佛全身舍利眞言梵書略抄陀羅尼)』, 『즉설모다라니(卽說姥陀羅尼)』, 한글로 인쇄된 『즉셜노다라니』, 기타 부적 다라니 외 4점 등이다.
학림사 석조약사여래삼불좌상은 작은 불상이면서도 그 형태적 특징을 예불자에게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조선 후기의 독특한 미감이 잘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된다. 약사불은 상체를 약간 오른쪽 앞으로 기울인 듯하고, 좌협시불은 왼쪽으로 기울인 듯이 표현되었는데, 이러한 미묘한 움직임은 이들 불상이 작은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함께 봉안된 자유분방한 오백나한상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준다.
학림사 석조약사여래삼불좌상은 정확한 조성연대와 조각승을 알 수 없으나, 경주 불석의 특성을 잘 살려서 단단한 괴체감이 돋보이게 만들었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경주 불석 조각상의 양식과 유통 연구에 참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