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자양서당 소장 전적 ( )

유교
문헌
국가유산
경상남도 성주군 자양서당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성주 자양서당 소장 전적(星州 紫陽書堂 所藏 典籍)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간본
지정기관
경상북도
종목
경상북도 시도유형문화유산(2011년 09월 22일 지정)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상성로 879-2 (용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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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경상남도 성주군 자양서당에 소장된 유학서. 종가유물.
개설

성주 자양서당 소장 전적은 19세기 말에 창건된 자양서당에 소장되어 있는 3종 15책으로, 『수계교본도연명시집(須溪校本陶淵明詩集)』 1책을 포함하여 『야은선생행록(冶隱先生行錄)』1책, 『이정전서(二程全書)』13책 등이다. 2011년 9월 22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신안주씨 성주군화수회에서 관리해오고 있다.

편찬/발간 경위

『수계교본도연명시집』은 1483년(성종 14)에 진주판관 윤석(尹晳)이 간행하였다. 도잠(陶潛, 365~427)의 문집은 이 책 외에 1522년(중종 17)에 충주에서 간행된『도연명집』, 1579년(선조 12)에 진주에서 간행한 『도연명집』, 1583년(선조 16)에 선조의 명에 따라 재주갑인자(再鑄甲寅字)로 간행한 『전주정절선생집(箋註靖節先生集)』등이 있다. 이 책은 삼척부사 윤계흥(尹繼興)이 간행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자 그 아들 윤석이 진주목사 이시보(李時珤)에게 청하여 간행한 것이다. 조선시대 『도연명집』가운데에 가장 먼저 간행한 것이다.

『야은선생행록』은 야은 길재(吉再)의 행록인데, 1573년(선조 6)에 선산(善山)에서 간행한 초간본이다. 야은 행록의 간행본을 살펴보면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羣玉)』의 「찬집서적목록(纂輯書籍目錄)」에 문인 박서생(朴瑞生)의 『야은언행록(冶隱言行錄)』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실제로 간행되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박서생이 1422년(세종 4)에 야은의 행장을 지었는데 이것을 일컬음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가 선조 때 선산군수 윤지형(尹之亨)이 금오서원(金烏書院)을 중수한 뒤 5대손 길회(吉誨)에게 이 행록을 간행하게 하였다.

『이정전서』는 송나라 정호(程顥) · 정이(程頤) 형제의 문집 활자본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조선에서 간행한 『이정전서』를 살펴보면 대구에서 판각한 책이 있었으며, 1566년(명종 21)에 갑진자(甲辰字)로 찍은 책도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17세기 초반에 간행된 것이다.

서지적 사항

『수계교본도연명시집』은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책의 크기는 27.9×17.3㎝이고, 판식은 사주쌍변에 반엽광곽이 20.2×14.1㎝이다. 계선이 있고, 10행 16자이며 판심은 상하로 내향(內向)하는 흑어미(黑魚尾)이다. 권말에 1483년(성종 14)에 쓴 윤석의 발문이 있다.

『야은선생행록』은 3권 1책의 목판본으로 책의 크기는 33.2×22.0㎝이고,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엽광곽이 24.6×18.1㎝이다. 계선이 있고, 10행 20자이며 판심은 대흑구(大黑口)에 상하로 내향하는 흑어미이다. 책머리에 야은의 유상(遺像)을 넣었고, 권말에 1573년(선조 6)에 쓴 최응룡(崔應龍)의 발문이 있다.

『이정전서』 13책(零本)은 훈련도감자본(訓鍊都監字本)으로 책의 크기는 32.0× 20.8㎝이고, 판식은 사주쌍변에 반엽광곽이 22.5×15.8㎝이다. 계선이 있고, 10행 18자이며 판심은 상하로 내향하는 이엽화문어미(二葉花紋魚尾)이다. 책머리에 1498년(연산 4)에 쓴 이한(李瀚)의 중간(重刊) 서문이 있다.

내용

자양서당은 주희의 영정을 봉안한 영각(影閣)의 건립과 함께 창건된 서당이다. 주희의 별호를 서당의 명칭으로 사용하여 그의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청소년 교육과 독립사상 고취를 위한 교육장소로 활용되었다.

『수계교본도연명시집』은 원나라 유진옹(劉辰翁, 1234~1297)이 평점한 것을 저본으로 하여 경상도 진주에서 간행하였고, 『야은선생행록』은 임진왜란 이전에 경상도 선산에서 간행하였다.『이정전서』는 17세기 초에 훈련도감에서 간행한 것이다.

이 책은 진나라 도잠의 시집인데, 원나라 유진옹이 평점(評點)을 하였다. 도잠의 자는 연명(淵明) 또는 원량(元亮)이며, 관직은 팽택령(彭澤令)에 이르렀는데, 탐관오리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껴서 전원에 은거하였으며, 문 앞에 버드나무 5그루를 심어서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 「도화원기(桃花源記)」, 「귀거래사(歸去來辭)」등이 있다.

서문 1편 제2행에 서문 쓴 사람을 ‘양(梁)’으로만 표기되었지만 고증해보면 양나라 소통(蕭統; 昭明太子)임을 알 수 있다. 본문은 3권으로, 권수 서명의 제2행에는 “정절선생 도원량(靖節先生 陶元亮)”으로 표기되었다. 상권에서는 「정운(停雲)」을 포함하여 33편(40수)의 시, 중권에서는 「시작진군참군경곡아(始作鎭軍參軍經谷阿)」를 포함하여 17편(29수)의 시, 하권에서는 「의고(擬古)」로부터 「도화원시(桃花源詩)」까지 10편(49수)의 시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 1편 등 총 61편이 실려 있다. 내용에는 유진옹의 평점 표기가 있어서 도연명 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책 말미에 윤석의 발문이 있고, “호장 정자량 각(戶長 鄭自良 刻)” 및 “전 사근도역승 정서 서(前沙斤道驛丞 鄭瑞 書)”가 표기되어 있다. 발문은 윤석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유호인(兪好仁, 1445~1494)이 대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명나라 하맹춘(何孟春)이 교간한 『도정절집』에서는 「도화원시」가 삭제되었는데, 이 판본에는 수록되어 있어서 판본학적 면에서도 중요하다. 『야은선생행록』은 고려 말기 학자인 길재의 행록이다. 상권의 첫머리에 길재의 「유상(遺像)」이 들어 있고, 이어서 권우(權遇)가 지은 「유상찬(遺像贊)」, 김순(金洵)이 지은 「사당벽상찬(祠堂壁上贊)」, 박서생이 지은 「행장」이 들어 있다. 다음으로 길재의 「우음(偶音)」을 포함한 10편의 시문이 있다. 중권에는 권근이 지은 「제구암제공소부시권서(題龜菴諸公所賦詩卷序)」를 포함하여 제현의 찬영시(贊詠詩)가 있다. 하권에는 김성원(金性源)이 지은 「청추증길재전(請追贈吉再箋)」을 포함하여 이보흠(李寶欽)이 지은 「제문」, 저자미상의 「금오산부(金烏山賦)」와 여러 문헌의 발췌문 등 10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 말미에 최응룡의 발문이 있다. 이 초간본은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 충남대학교도서관 등에만 소장되어 있다.

『이정전서』는 송나라 성리학자인 정호 · 정이 형제의 문집이다. 목록을 중심으로 내용을 살펴보면 「유서(遺書)」 28권, 「유서부록(遺書附錄)」 1권, 「외서(外書)」 12권, 「경설(經說)」 8권, 「명도문집(明道文集)」 5권, 「이천문집(伊川文集)」 8권, 「문집유서(文集遺書)」 1권, 「속부록(續附錄)」 2권, 「수언(粹言)」 1권(1권 缺) 등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 14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1책이 결본되어서 현재 13책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도잠의 『수계교본도연명시집』은 1483년(성종 14)에 간행한 목판본이고, 길재의 『야은선생행록』은 1573년(선조 6)에 간행한 목판본이다. 이 2종의 책은 조선시대의 초간본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정호 · 정이 형제의 『이정전서』는 훈련도감자로 찍은 임진왜란 이후의 최초본이다. 송나라 주요 성리학자의 문집이며, 전체 14책 가운데 13책이 보존되어 있어서 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책판목록』(정형우·윤병태 공편, 보경문화사, 1995)
『한국책판목록총람』(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79)
『청분실서목』(이인영, 보련각, 1968)
국가유산청(www.kh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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