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대풍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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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대풍헌 정측면
울진 대풍헌 정측면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로 가던 수토사 관련 건축물. 동사(洞舍). 시도기념물.
정의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에 있는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로 가던 수토사 관련 건축물. 동사(洞舍). 시도기념물.
개설

울진(蔚珍) 대풍헌(待風軒)은 조선시대 삼척 진영에 속한 평해군의 기성면 구산리(邱山里)에 위치한 건물로, 울릉도와 독도에 파견된 수토사(搜討使)들이 배를 타기 전 바람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곳이다. 2005년 9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3월 11일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대풍헌은 '바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의미로, 조선시대 구산포(邱山浦)에서 울릉도와 독도로 가던 수토사들이 머물렀던 장소이다. 이후 구산 마을 주민들의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대풍헌에 소장되어 있는 현판 및 각종 문서들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독도 영유권 문제가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기념물로 등급 조정되었다.

이 건물은 평면 구성이나 일부 가구 수법에서 특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건물의 여러 부분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조, 변형되었다는 이유로, 해체 복원되었다. 이후 복원된 대풍헌은 정면 4칸에 측면 3칸으로 구성되었다. 건물을 바라다보면서 맨 우측 칸에 전면 퇴를 두고 온돌방을 시설하였으며, 좌측은 모두 마루를 깔아 대청을 꾸몄다. 5량가로 상부를 구성하고 팔작 형태로 기와지붕을 올렸다. 기둥은 전면과 내부 가운데 열만 원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각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상부는 초익공으로 장식하였고, 부재의 머리 부분에만 무늬를 넣어 단청하는 모로 단청을 시채(施彩)하였다.

대풍헌의 건립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2010년에 건물을 보수하면서 1851년(철종 2)에 중수했다는 상량문이 발견되었다. 그 내용은 '함풍 원년(咸豊元年) 신해, 즉 1851년(철종 2) 3월 초 2일 사시(오전 9∼11시)에 입주하고 술시(오후 7∼9시)에 상량한다'는 것이다. 1851년(철종 2) 6월에 중수했다는 「구산동사 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의 기록을 통해 보면, 상량문은 「구산동사 중수기」의 현판보다 3개월이 빠르다. 따라서 건물 준공까지 3개월 정도 걸린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량문에는 당시 중수에 참여한 주민과 목수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대풍헌의 대청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구산동사 중수기」1점(1851년), 「대풍헌(待風軒)」 1점(1851년), 「구산동사 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 1점(1851년), 「영세불망지판(永世不忘之板)」 6점(1870∼1878년), 「구산동사기(邱山洞舍記)」 1점(1888년), 「동계 완문(洞稧完文)」 1점(1904년), 「중수기(重修記)」 1점(1906년)이 걸려 있으며,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수토절목」과 「완문」도 전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울릉도 지역을 담당하던 수토사들의 출발지였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울진 대풍헌 현판」(심현용, 『대구사학』 제98집, 2010)
문화재청(www.cha.go.kr)
유교넷(www.ugyo.net)
집필자
정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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