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황해도 벽성 출생으로, 본관은 순흥(順興), 호는 강사(江史)이다. 1935년 해주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9년 일본 도쿠시마 고등공업학교[德島高等工業學校]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였다. 1960년 국방대학원를 수료하였고, 1981년 충남대학교에서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철도국 기수로 있다가, 1950년부터 교통부 시설국 건설과 과장 및 보선과 과장으로 근무하였다. 건설과 과장 재직 중에는 1952년 10월 국내 철도 인프라 기반 마련을 위해 구성된 미국·캐나다 철도시설 시찰단에 참여하였으며, 1958년 보선과 과장 시절에는 아세아극동위원회 총회 내륙운수분과위원회 한국대표단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1960년 5월 교통부 기정(技正)으로 승진하였고, 동년 8월에는 국무총리 직속 국토건설본부의 기술부 차장도 겸직하였다. 1961년 5월 건설부 국토건설국 국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국가재건최고회의 건설부문 기획분과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곧이어 1961년 7월에는 국토건설청 차장으로 보직을 옮겼으며, 내무부 산하에 편제되어 있던 도시계획위원회가 국토건설청 산하로 개편·강화되면서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또한 국토건설청 차장으로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안 심의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였으며, 종합공업지대 선정 당시 정부 조사단장으로 임명되어 울산 종합공업단지 조성에도 기여하였다. 이러한 경력을 인정받아 1962년 6월부터 1963년 3월까지 울산개발계획본부 본부장직을 역임하였다.
1963년 3월부터 1964년 7월까지 건설부 차관으로 활동하였으며, 곧이어 김윤기 장관의 후임으로 제16대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교통부 장관 재직 중이었던 1965년에는 「대한민국 공역위원회 설치에 관한 협정」을 유엔군사령부와 체결하여, 한국 공역 관리권을 유엔군 사령관 관할에서 교통부 장관 관할로 귀속시켰다 또한 철도사업의 경영 합리화를 위한 조치로 철도청을 철도공사로 개편해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교통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1967년 12월부터는 한국수자원개발공사 사장에 임명되었으며, 동시기 국가기간고속도로계획조사단 단장직도 겸임하였다.
이후 국토종합계획 심의위원,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상임위원, 산업기지개발공사 사장,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수문학회 회장, 토목학회 회장, 대한원격탐사학회 회장,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및 비상임고문, 한국엔지니어클럽 회장직을 수행하였다. 한국과학기술 한림원 정회원, 미국 콘크리트학회 회원이기도 했으며, 1969년 청조근정훈장과 1975년 금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2010년 8월 26일 향년 93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