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출생으로 본관은 한양, 호는 월당(月當)이다. 1939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자대학교) 문과를 졸업했으며, 이화여자전문학교 재학 시절인 1938년 잡지 『한글』에 수필 「측간단상」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이화여자전문학교 졸업 후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나, 이듬해 8월 조선일보가 강제 폐간되면서 매일신보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서울신문 사회부 기자, 중앙신문 사회문화부 기자, 희망사 문화부 부장, 부산일보 문화부 차장 및 부장, 여성계 주간, 평화신문 문화부 부장, 서울경제신문 문화부 부장, 새나라신문 편집국 국장, 주간한국 부장, 한국일보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1961년 4월 발족된 한국여기자클럽 부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문인으로서의 활동으로는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위원장 및 부이사장, 한국여류문학인회 초대 간사장 및 회장, 한국수필가협회 회장, 펜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및 이사,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문예진흥후원협의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1984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재직 당시 4·13 호헌조치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제6공화국 출범과 동시에 여성 정책을 전담하는 정무 제2장관실이 신설되면서 초대 정무 제2장관에 발탁되었다. 장관 취임 직후 전국 13개 시·도의 여성가정복지과장을 모두 국장으로 승진 발령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정부기관 및 관련 단체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해 문화공보부 영화심의위원, 한국방송윤리위원회 윤리위원, 공연윤리위원회 이사, KBS방송자문위원회 부의장, 5·16 민족상 재단이사 및 심사위원,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문화분과 위원장, 올림픽조직위원회 문화홍보분과 위원장, 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교육정책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예술의전당 이사장, 서울예술단 이사장, 한국여성개발원 이사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우화』(1955), 『가깝고 먼 세계』(1963), 『음치의 자장가』(1966), 『얼굴』(1966), 『면역의 원리』(1978), 『골목은 아침에 나보다 늦게 깬다』(1982), 『Three Essayist from Korea』(1982), 『웃음이 어울리는 시대』(1988), 『낙엽의 침묵』(1994), 『치자꽃』(1999), 『하얀꽃들』(1999), 『언제나 새길을 밝고 힘차게: 조경희 자서전』(2004) 등이 있으며, 상훈으로는 한국문학상, 서울시문화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본상, 청조근정훈장, 프랑스 예술문학공로상, 춘강상, 은관문화훈장,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이 있다. 서울여자대학교와 청주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으며, 2005년 8월 5일 숙환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