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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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
인물
대한제국기 때, 자신회에 가입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66년
사망 연도
1907년 7월 13일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내용 요약

최상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자신회에 가입하여 을사오적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독립운동가.
주요 활동

을사조약 후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매국 대신들에 대한 비판 열기가 높아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07년 2월 일본에서 한국독립 청원 활동을 벌이고 돌아온 전직 관료 나인영(羅寅永)오기호(吳基鎬)주1을 비롯한 친일 대신들을 처단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자신회(自新會)라는 비밀결사를 통해 장사들을 모집하여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1907년 3월 25일 오기호, 김동필(金東弼), 이홍래(李鴻來), 이용채(李容采) 등이 거느린 4인 1조의 6개조 결사대는 광화문에서 박제순(朴齊純)을, 돈의문에서 이완용(李完用)을, 합동(蛤洞)에서 이하영(李夏榮)을 노렸으나 일본군의 호위가 삼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다만 사동(寺洞)에서 이홍래의 결사대원 강원상(姜元相)이 권총으로 권중현(權重顯)을 저격하였으나 명중하지 못했다. 이근택(李根澤)은 권중현 피격 사실을 전해 듣고 집에 틀어박혀 결사대의 공격을 피하였다.

나인영, 오기호는 재차 거사를 도모하기 위해 박대하(朴大夏)에게 장사들을 모집하게 하였다. 그러나 시종원(侍從院) 주2을 지낸 서창보(徐彰輔)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 끝에 거사 계획을 토로하였다. 이로 인해 거사의 전말이 일제에게 탄로되어 거사 동지들이 체포되었다.

거사일에 최상오(崔相五)는 박응칠(朴應七), 황경오(黃景五)와 함께 친일 대신들을 처단하기로 약속한 장소로 갔으나, 미처 착수하지 못하고 피신하여 돌아갔다. 이어 동료 20여 명과 함께 각기 총과 몽둥이를 가지고 전라북도 금산군 보광리와 두두리 등지에서 항일 활동에 필요한 조총과 금전 등을 빼앗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었다.

1907년 7월 3일 평리원 재판에서 박응칠, 황경오와 함께 주3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오영섭, 『한말 순국 의열 투쟁』(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고정휴, 『이승만과 한국독립운동』(연세대학교 출판부, 2004)
정교 저 · 조광 편 · 변주승 역주, 『대한계년사』 8(소명출판, 2004)

논문

오영섭, 「대종교 창시 이전 나인영의 민족운동」(『한국민족운동사연구』 39,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4)
주석
주1

구한말에 을사조약의 체결에 가담한 다섯 매국노.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을 이른다.    우리말샘

주2

대한제국 때에, 내장원(內藏院) · 시종원(侍從院) · 장례원(掌禮院) · 태의원(太醫院)의 종2품 벼슬.    우리말샘

주3

목을 옭아매어 죽이는 형벌. 교수형이라고도 함.

집필자
오영섭(경희대학교 한국현대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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