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재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5년 7월 10일
사망 연도
1991년 11월 10일
출생지
평안남도 용강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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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의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노영재(盧英哉)는 1895년 7월 10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오신면(吾新面) 구룡리(九龍里)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낸 애국지사 김붕준(金朋濬)의 부인이다. 아들 김정목, 딸 김효숙 · 김정숙(金貞淑), 사위 송면수 · 고시복 등이 모두 독립운동가이며, 이 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최초의 여성 대원이다.

주요 활동

노영재는 1921년 6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밀파된 안내원을 따라 7월에 온 가족이 인천항에서 어선을 타고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정신이상 증세까지 보인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 회장 김마리아와 함께 상하이행을 결행하였다. 이들은 인천을 탈출하여 약 1개월 만인 8월 초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1930년 1월 상하이에서 김구(金九) · 조완구(趙琬九) · 윤기섭(尹琦燮) · 엄항섭(嚴恒燮) · 이시영(李始榮) · 차리석(車利錫) · 김붕준 등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이 창립한 독립운동 단체인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에 참여하였다. 한국독립당이 충칭〔重慶〕 시절(1940~1945)에 작성해 놓은 연도 미상의 당원 명부에 지청천(池靑天, 일명 이청천) · 이광(李光) · 이시영 · 이복원(李復源) · 이달수(李達洙) 등 173명과 함께 당원으로 등재되어 있었다. 남편 김붕준은 1934년 6월에 작성된 한국독립당 당원 명부에 등재되어 있었다.

1935년 11월 항저우〔杭州〕에서 설립된 한국국민당(韓國國民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한국국민당은 김구 · 이동녕(李東寧) · 송병조(宋秉祚) · 조완구 · 차리석 · 안공근(安恭根) · 엄항섭 · 이시영 등이 설립한 민족주의 계열 정당이었다.

1941년 6월 충칭에서 노영재는 이헌경 · 정정화 · 이국영 · 김효숙 · 방순희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부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韓國革命女性同盟)에 참여하였다. 1943년 3월경 잘못을 범한 당원에 대한 처벌 방침에 따라 김경직(金經稷) · 강홍주(姜弘周) · 김복오(金福五) · 김신두(金信斗)와 함께 한국독립당 당적에서 제명되었다.

1944년 3월 김원봉(金元鳳)이 주도한 좌익계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때 최석순(崔錫淳) · 김순애(金淳愛, 김규식의 부인) 등 24명과 함께 감찰위원을 맡았다.

1932년 이후부터 1945년 8 · 15광복까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따라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임시정부 요인들과 독립투사의 뒷바라지에 힘썼다. 8 · 15광복 후 귀국하여 지내다가 한국전쟁으로 남편 김붕준이 납북되었다가 유엔군의 공습에 휘말려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노영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34-한국독립당 Ⅱ』(국사편찬위원회, 2009)
강만길, 『조선민족혁명당과 통일전선』(역사비평사, 2003)
『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 4–조소앙 편』(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노경채, 『한국독립당 연구』(신서원, 1996)

논문

이윤옥,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얼레빗, 2021)
조범래, 「한국국민당 연구」(『한국독립운동사연구』 4,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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