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金貞淑)은 1916년 1월 25일 평안남도 용강군(龍岡郡) 오신면(吾新面) 구룡리(九龍里)에서 김붕준(金朋濬, 이명 김기원)과 노영재(盧英哉)의 1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오빠는 김덕목(金德穆), 언니는 김효숙(金孝淑)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인성학교(仁成學校)를 졸업하고, 중국의 중학교인 민생(民生)중학에 다녔다. 고등학교는 아버지가 선택한 기독교 학교인 혜중(惠中)학교를 언니 김효숙과 함께 다녔다. 김효숙과 함께 중산대학(中山大學)에 진학하여 1937년 7월 1일 졸업하였다.
김붕준이 중국으로 간 이후 1921년 김정숙과 가족들은 병보석으로 출감한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 김마리아를 상하이로 탈출시키기 위해 파견된 임시정부 특파원 윤응념(尹應念)의 안내로 김마리아, 도인권(都寅權) 가족과 함께 중국으로 출발하였다. 1920년 12월 김정숙의 둘째 큰아버지 김긍준(金兢濬)이 군자금을 모금하러 온 네 명을 김정숙의 집에 머물게 하였는데, 얼마 후 그들 중 두 명이 진남포에서 일제 경찰에 체포되면서 용강군에 머문 사실이 발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용강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을 거쳐 인천에서 중국 위해위(威海衛)에 도착하였으며, 위해위에서 화륜선으로 1921년 6월 24일 상하이에 도착하였다.
윤봉길 의거 다음 날인 1932년 4월 30일 오빠 김덕목 등 네 명이 체포되었고, 1932년 9월경 김정숙은 언니 김효숙과 함께 상하이에서 아버지 김붕준이 있는 광둥성〔廣東省〕으로 이동하였다. 1937년 7월 언니 김효숙과 함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고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1939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은 류저우〔柳州〕를 떠나 쓰촨성〔四川省〕 기강(綦江)에 도착하여 머물렀는데, 남자 67명, 여자는 김정숙 등 40명, 총 107명이었다. 기강현 정부에서는 한교등기잠행판법(韓僑登記暫行辦法)을 제정하여 한인(韓人)들에게 거주 신청서를 제출하게 하였고, 이에 따라 등록증을 발급하였다. 임시정부 요인 및 가족들은 대부분 상승가(上昇街) 진가공관(陳家公館)에 머물렀다.
1940년 6월 17일 한국혁명여성동맹을 창립하여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고, 1940년 9월 17일 가릉빈관(嘉陵賓館)에서 개최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전례식에 오광심(吳光心) · 조순옥(趙順玉) · 지복영(池福榮) 등과 함께 군복을 입고 참가하여 치경문(致敬文, 축사)을 낭독하였다.
1941년 1월 1일 대한민국임시의정원 비서로 선임되어 같은 해 10월 17일까지 활동하였고, 1943년 4월 13일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1944년 5월 31일 임시정부 법무부 비서, 1944년 6월 19일 법무부 총무과장으로 겸임 임명되었다. 1942년 11월 장교와 사병들의 복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총사령부에서 설립한 ‘한국광복군 관병소비합작사(官兵消費合作社)’의 사원으로 2주 800원을 소유하였는데, 사원 대부분이 2주를 소유하였다.
1944년 3월 최형록(崔亨祿)과 함께 대한민국애국부인회의 서무 · 재무의 두 개 부(部)를 맡았으며,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같은 해 고시복(高時福, 이명 고일명)과 결혼하였다. 1945년 초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 설치된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민영주(閔泳珠) · 신순호(申順浩) · 지복영(池福榮) 등과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은 임시정부 선전부가 중국 국민당 선전부 대적선전위원회와 합작하여 1944년 2월부터 한국어 방송을 시작하게 되자 한국광복군에서도 이를 이용하여 전개하였다.
1945년 11월 1일 박찬익(朴贊翊)을 단장으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주화대표단(駐華代表團)의 한문(漢文) 비서로 활동하다가 귀국하였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