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김영식(金永植)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2년 2월 27일
사망 연도
1985년 12월 11일
출생지
황해도 신천
대표 상훈
건국포장(1977)|건국훈장 애국장(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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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김용주는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으로 초모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41년 1월 1일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어 제5지대원이 되었으며, 1945년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제2지대 총무조원 겸 공작조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독수리작전의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인적 사항

김용주(金容珠)는 1912년 2월 27일 황해도 신천군(信川) 두라면(斗羅面) 신전리(新田里) 344번지에서 태어났고, 신천중학에서 공부하였다.

주요 활동

1939년 10월 중국 충칭〔重慶〕에서 결성된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에 입대하였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한 · 중 연합으로 일본군과 전투하기 위해 결성 직후 중국군 제10전구(戰區) 사령부가 있는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으로 이동하였고, 중국군 제34집단군(集團軍) 호종남(胡宗南) 사령관과 교섭하여 1940년 3월 중앙전시간부훈련단 제4단에 한국청년훈련반을 신설하여 4월부터 훈련을 시작하였다.

한국청년전지공작대의 주된 활동은 중국 항전에 대한 협조 외에 초모(招募) 활동이었고, 그를 위한 교육도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청년훈련반은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들을 전방으로 파견하기 전에 재교육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훈련 중인 1940년 5월 김용주 등 8명의 대원이 제34집단군 태항산(太行山)유격대 정훈부에 배속되어 일본군 점령 지역 내에 있는 한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초모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본군 제36사단이 주둔하고 있는 노안(潞安)을 비롯하여 신향(新鄕) · 초작(焦作) · 수무(修武) · 장치(長治) 등지에서 초모 활동을 전개하여 노안에서만도 60여 명의 인원을 초모하였다. 초모된 인원들은 전지공작대 본부가 있는 시안으로 후송하였다. 김용주 등 한국청년전지공작대 대원들의 활발한 초모 활동으로 한국청년전지공작대원의 수는 결성 1년여 만에 30여 명에서 100여 명으로 증가하였다.

1941년 1월 1일 신년 단배식(團拜式)이 끝난 후 한국청년전지공작대는 시안의 본부에서 한국광복군 제5지대로 편성되었고, 이때 김용주는 제5지대원이 되었다. 그런데 1942년 3월 1일 3 · 1절 기념식 후 제5지대 본부에서 지대장 나월환(羅月煥)이 동료 대원들에게 살해되었다. 나월환 살해 혐의로 제5지대 대원 중 20여 명이 체포되었고, 김용주도 이 사건에 연루되어 2년 도형(徒刑)을 받았다. 암살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만인 1942년 4월 1일 제5지대는 기존의 제1, 2지대와 통합되면서 제2지대로 편성되었다.

1945년 김용주는 제2지대와 미국 전략정보국(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이 함께 추진한 독수리작전(Eagle Project)에 참여하였다. 제2지대 대원 125명 중 50명이 선발되어 제1기 훈련을 시작하였는데, 훈련은 첩보 공작에 중점을 두었으며, ‘첩보훈련반’과 ‘통신반’으로 구분되었다. 훈련 과목은 첩보 및 통신교육, 일본군 전투서열, 심리 전술, 독도법 등 다양하였다. 특히, 무전 기술 습득을 위한 통신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7월 말 제1기생 훈련이 종결되었고, 8월 4일 38명이 수료하였다.

독수리작전의 원래 계획안은 1945년 초여름쯤 5개의 전략 지점(서울 · 부산 · 평양 · 신의주 · 청진)에 대원들을 침투시켜 군사시설, 산업시설, 교통망 등의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독수리작전은 일본의 포츠담선언 수락 통보 이후 목적이 변경되었고, 한국광복군은 8월 11일 지청천(池靑天, 이명 이청천)을 지휘관으로 하는 국내 정진군(挺進軍)을 편성하였다. 제1지구(평안도 · 황해도 · 경기도), 제2지구(충청도 · 전라도), 제3지구(함경도 · 강원도 · 경상도) 등 3개 지구로 나누고, 8월 20일 이전에 한반도 전역에 잠입한다는 계획이었다. OSS 훈련 정보파괴반을 수료한 김용주는 국내 정진군 함경도반 반장으로 임명되어 국내 진입을 기다리던 중 8 · 15광복을 맞이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포장 수여,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지복영, 『민들레의 비상: 여성 한국광복군 지복영 회고록』(민족문제연구소, 2015)
김광재, 『한국광복군』(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7)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9: 군무부』(국사편찬위원회, 2006)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11: 한국광복군 II』(국사편찬위원회, 2006)
『대한민국임시정부 자료집 13: 한국광복군 IV』(국사편찬위원회, 2006)
『不屈의 民族魂』(한국광복군 제2지대, 1994)
한상도, 『한국독립운동과 중국군관학교』(문학과지성사, 1994)
한시준, 『한국광복군 연구』(일조각, 1993)
『독립유공자공훈록』 5(국가보훈처, 198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6: 독립군전투사』 하(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5)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4: 임시정부사』(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3)

논문

한상도, 「나월환의 독립운동 역정과 피살 사건의 파장」(『한국독립운동사연구』 50,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5)
집필자
윤선자(전남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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