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文臣) 정원용(鄭元容, 1783∼1873)이 회령(會寧)을 비롯한 함경도 북부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제도 개선책, 지역의 연혁과 유적, 풍속 등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1829년(순조 29) 회령부사(會寧府使)에 임명되어 1년여 동안 부임하였다가,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그 동안의 견문을 토대로 본서를 저술하였다.
3권 3책. 필사본. 책 크기는 세로 33.7㎝, 가로 22.4㎝이다.
「북략의의(北略擬議)」(1∼2책)와 「철북습록(鐵北拾錄)」(3책)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북략의의」는 함경 북부 지역의 사회·경제적 상황 및 시폐(時弊)의 개선 방안 등을 기록한 것이다. 제1책에는 서문과 ‘북관총록(北關總錄)’, ‘관방(關防)’, ‘산천(山川)’, ‘성적(聖蹟)’, 제2책에는 ‘인물(人物)’, ‘교사(敎士)’, ‘전정(田政)’, ‘군제(軍制)’, ‘적정(糴政)’, ‘개시(開市)’ 등 모두 10개 항목으로 나누어 정리되어 있다. 이 중 ‘북관총록’에는 각 읍의 연혁, 고려와 조선 초기의 지역 개척사, 관방 형세와 북평사(北評事) 제도‚ 진보(鎭堡) 운영‚ 경흥부 읍치 이전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산천’에서는 백두산이 우리나라의 종산(宗山)임을 강조했으며, 1712년(숙종 38) 백두산 정계(定界)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서술했다. ‘성적’은 태조 이성계 및 그 선조들의 행적과 관련 유적을 정리한 것이며, ‘교사’는 교육의 연혁과 문풍(文風) 진흥 방안을 서술한 것이다. 또, ‘전정’과 ‘적정’은 전세와 환곡 운영, ‘개시’는 북관개시(北關開市)에 대한 설명이다. 한편, 각 항목마다 ‘의(議)’를 두어 시폐(時弊)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기록했으며, 회령에서 청(淸)의 영고탑(寧古塔)과 오라(烏喇)까지의 노정(路程)도 경유지와 거리‚ 소요 일수 등을 자세히 기재하였다.
다음으로, 「철북습록」은 ‘철북습록’, ‘두외보문(豆外補聞)’‚ ‘북속기략(北俗紀略)’ 등 세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철북습록’은 함경 북부의 관방 요충지, 경제 중심지‚ 고적 및 왕실 관련 유적 등을 정리한 것이며, ‘두외보문’은 두만강 이북 지역의 유적과 제반 상황에 대해 서술하였다. ‘북속기략’에는 북관 지역의 풍속‚ 농경의 특징‚ 의복‚ 가옥제도‚ 문사들의 수준‚ 언어‚ 특산물‚ 수레 사용 실태 등이 기록되어 있다.
19세기 전반 함경도 북부 지역의 실정을 소개한 자료들 중에서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 북방지역사 연구의 핵심 자료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