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왕환일기 ()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무신 위정철이 회답사로 후금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이칭
이칭
심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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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무신 위정철이 회답사로 후금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 사행록.
개설

위정철(魏廷喆, 1583∼1657)은 조선 중기의 무신(武臣)으로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21살 때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여러 차례 대청(對淸) 외교 실무를 담당하였다. 본서는1631년(인조 9) 3~5월 사이에 회답사(回答使)로 후금(後金)에 파견된 저자가 기록한 사행일기로, 압록강을 건넌 3월 19일부터 사신(使臣) 임무를 마치고 의주(義州)로 돌아온 4월 30일까지의 일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다. 이전에는 저자를 박난영(朴蘭英)으로 추정했으나, 최근 연구를 통해 위정철로 확인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국왕에게 올리는 보고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저자가 사행에서 돌아온 직후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나 정확한 편찬 시기는 알 수 없다.

서지적 사항

1책, 필사본(후사본), 책 크기는 세로 30㎝ 가로 20㎝이다. 권두(卷頭)의 서명(書名)은 ‘심양왕환일기(瀋陽往還日記)’로 되어 있는 반면에, 표지(表紙)의 서명(書名)은 ‘심양일기(瀋陽日記)’로 되어 있다.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1927년 11월에 전라남도 장흥군 고읍면(古邑面)에 거주하던 위순량(魏順良)의 소장본을 베낀 등사본(謄寫本)을 1929년 6월에 다시 등사한 후 사본(後寫本)으로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본서에는 1631년 3월 19일 압록강을 건널 때부터 4월 30일 의주로 돌아올 때까지 위정철 일행의 여정 및 사신 임무 수행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위정철 일행은 압록강을 건넌 후 7일 만인 3월 26일에 심양에 도착했고, 다음날(27일)부터 후금 관원들과 외교교섭을 시작하였다. 이보다 앞서 후금은 조선이 춘신사(春信使)를 통해 보낸 예물(禮物)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이유로 두 차례나 예물 접수를 거절했다. 이에 조선은 저자를 회답사로 보내어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했고, 그는 조선의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여 후금의 오해를 풀고 예물을 전달함으로써 임무를 완수했다. 이밖에 조선의 대일(對日) 관계를 설명하고 후금이 요청한 약재(藥材)의 대가에 대해 협의했으며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잡혀 간 조선인 포로의 송환을 요청하는 등의 교섭 활동을 펼쳤다.

또, 4월 21일에는 홍타이지[皇太極]를 만나 인조의 국서(國書)를 전달하고, 그의 국서를 받아 귀국하려 했지만, 홍타이지가 개시(開市) 협상을 위해 조선에 간 용골대(龍骨大)가 돌아온 후 국서를 보내겠다고 함에 따라 4월 25일에 심양을 출발하여 조선으로 돌아왔다.

한편, 일기의 마지막 부분에는 후금의 칸[汗]의 계보(系譜)가 실려 있는데, 이는 후금에 대한 정보를 조정에 제공하려는 의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또, ‘후금’이라는 국호 대신 ‘호(胡)’라고 지칭한 것을 통해 저자의 후금에 대한 반감을 엿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병자호란 이전 조선과 후금 사이의 외교 현안과 구체적인 교섭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인조실록』
『조선시대 북방사-자료집』(동북아역사재단 저, 동북아역사재단, 2007)
「『심양왕환일기』에 나타난 인조 9년(1631) 조선-후금 관계」(스즈키 카이(鈴木 開), 『한국문화』68, 2014)
집필자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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