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주(洪奭周, 1774∼1842)가 작성한 글들을 베껴 놓은 초고(草稿)로, 향후 문집의 편찬·간행에 대비해서 만든 자료집으로 추정된다. 글의 해석 방향을 판단한 내용이 실려 있고 첨삭(添削)이 가해진 곳도 있는 것으로 볼 때, 홍석주가 직접 자신의 글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본서에 수록된 글들의 작성 시기를 고려할 때, 제1책에서 15책까지는 저자가 1787년부터 1838년 사이에 수시로 필사해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16∼17책은 15책까지의 정리를 마친 1838년 이후부터 1841년경 사이에 그때까지 지은 가장(家狀)·행장(行狀)과 묘도문자(墓道文字)들을 따로 모아서 베껴 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불분권(不分卷) 17책. 필사본. 책 크기는 세로23.5㎝ 가로 22.5㎝이다.
저자가 본서를 편집할 때 기본적으로 저작 시기에 따라 저술을 정리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문집에서 보이는 문체별 분류는 본서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볼 때, 제1∼6책에는 역사와 경학(經學)에 관한 단독 저술과 논설, 독서기(讀書記) 등의 비중이 높은 반면, 7∼15책에는 문학이론과 서간, 서(序)·발(跋)·기(記) 등의 문학 저술이 많이 실려 있다. 그리고 16∼17책에는 가장·행장과 묘표(墓表)·묘갈(墓碣)·묘지(墓誌)·신도비문(神道碑文) 등의 묘도문자들이 수록되어 있다.
한편, 제3책과 4책은 수록된 글의 작성 시기를 볼 때 순서가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또, 제8책과 14∼15책에는 ‘추록(追錄)’이라고 표시된 글들이 있는데, 이는 작성 당시 바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하여 추가로 기록했음을 의미한다. 이런 모습들은 본서의 작성 연도 순 배열이 완전하지 못함을 보여준다.
본서에 실린 주요 저술로는 「대역상전(大易象傳)」·「휘사정편소목록술(彙史正編小目錄述)」·「명사관견(明史管見)」·「속명사관견(續明史管見)」·「독역잡기(讀易雜記)」·「휘사소찬(彙史小贊)」 등이 있다. 모두 역사와 역학(易學)에 관한 것이어서 저자가 이 분야의 연구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밖에 「원시(原詩)」는 율시(律詩)보다는 고체(古體)를 존숭했던 홍석주의 시관(詩觀)이 피력되어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관자(管子)』·『순자(荀子)』·『안자(晏子)』·『열자(列子)』 등 32종에 달하는 제자서(諸子書)에 대한 독서기는 홍석주의 독서 범위가 매우 넓었음을 잘 보여준다.
18∼19세기를 대표하는 학자의 한 사람인 홍석주의 학문과 사상을 담고 있는 저술로, 저자 개인뿐만 아니라 19세기 사상계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저자 자신이 직접 정리한 초고본이라는 점에서 홍석주의 사상적 경향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