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강서원 ()

유적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있는 하공진과 하윤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있는 하공진과 하윤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개설

고려시대 문신인 진양하씨의 시조 하공진(河拱辰, ?∼1011)과 조선 전기 문신인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 1452∼1500)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연산군 대부터 내려오던 영모재(永慕齋)의 새로운 이름으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1869년(고종 6)에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가 1980년에 재건하였다.

내용

서원은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사당, 강당, 솟을대문을 남북축 선상에 일렬로 배치하고, 강당 오른쪽 뒤편에 내삼문을 배치하였다. 앞쪽에 교육 시설인 강당을, 뒤쪽에 제향 시설인 사당을 마련한 전학후묘의 배치 형태를 하였다.

정문인 덕후문(德厚門)은 솟을대문 형태이며,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면에만 퇴를 둔 전퇴집이다. 방[室]의 배열은 전면 반 칸을 뒤로 물려 내루(內樓)를 마련한 좌·우·중앙으로 배열되어 있다. 외벌대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놓고 전면에만 원형기둥을 사용하였으며, 나머지는 방형기둥을 사용한 홑처마 팔작 민도리집인데, 슬레이트로 지붕을 마감하였다. 각각의 방에는 문틀 아래에 머름이 있는 두 짝 세살창을 달았다.

내삼문인 경충문(景忠門)은 정면 3칸, 측면 1칸인 맞배지붕 형태이다. 사당인 경인사(景仁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측면에서 볼 때 앞쪽 한 칸은 개방된 툇간을 이루었다. 기단은 시멘트로 덮어버려 볼 수 없으나 대략 자연석을 4∼5단 정도 쌓아 다소 높게 조성하였고, 전면에 4단의 계단을 2개소에 시설하였다. 초석은 원형초석을 사용하였고 기둥은 원형기둥을 사용하였다. 각각의 칸에는 두 짝 판장문을 시설하였다.

강당과 사당을 갖추고 있으나, 동·서재는 남아있지 않다. 또한 서원의 좌측에는 2006년 7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진양하씨 재실인 운수당(雲水堂)이 있다. 향사는 매년 음력 2월 23일에 행한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문중 서원의 변천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서원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국역진양지』(진주문화원, 2004)
『진주누정지』(진주문화원, 1995)
『진주시사』(진주시사편찬위원회, 1995)
디지털진주문화대전(jinju.grandculture.net)
집필자
이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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