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온(陳溫)은 본관이 여양(驪陽: 홍성)이고, 진준(陳俊, ?1179)의 손자이자 진화(陳澕)의 동생이다. 할아버지 진준은 무장(武將)으로 참지정사(參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를 지냈으며, 성품이 순박하고 정직하여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문신들이 화를 면하게 보호해 주었다. 그 음덕(蔭德)으로 손자 진식(陳湜), 진화, 진온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문장으로 이름이 났다고 한다. 형인 진화는 호가 매호(梅湖)이고, 직한림원(直翰林院)과 우사간·지제고(右司諫知制誥)를 지냈다. 시를 잘 지어 이규보(李奎報, 11681241)와 당대에 이름을 나란히 하였으므로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 “이정언(李正言) 진한림(陳翰林) 쌍운주필(雙韻走筆)”이라 칭송하였다. 『동문선』에 40여 수의 한시가 뽑혀 있으며, 조선 정조 때 후손들이 편찬한 『매호유고(梅湖遺稿)』가 전한다.
진온은 1213년(강종 2)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예빈시경(禮賓寺卿)에 이르렀으며,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역임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여양 진씨에서 떨어져 나와 나주를 본관으로 삼음에 따라 나주 진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의 시문은 『동문선』 권20에 7언절구 ‘사시사(四時詞)’ 4수가 전한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정취를 차례로 읊은 것으로, 〈춘〉과 〈추〉가 여러 시선집(詩選集)에 거듭 뽑혀 있다. 진화의 『매호유고』 부록에도 「예빈경공시(禮賓卿公詩)」라는 제목 아래에 약전(略傳)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