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 ()

불교
개념
언설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불교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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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불립문자는 언설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리이다. 불립문자는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자재하게 활용하는 선의 입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선종에서는 경론의 문자와 교설만을 연구하고 강조하는 것은 불교의 진정한 정신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진정한 정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승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종지를 주장하였다. 불립문자의 전통은 나말여초에 구산선문(九山禪門)으로 이어진 후 한국 선의 사상적인 특징으로 정립되었다.

정의
언설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불교교리.
개설

불립문자는 선의 종지를 표현하는 어구인 ‘불립문자(不立文字) · 교외별전(敎外別傳) · 직지인심(直指人心) · 견성성불(見性成佛)’ 가운데 일구로서 일반적으로 교외별전의 일구와 함께 언급된다.

문자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은 언설과 문자를 활용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언설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다.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자재하게 활용하는 선의 입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선종에서는 교학에서 경론의 문자와 교설만을 주된 것으로 삼아서 연구하고 강조하는 것은 불교의 진정한 정신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정법은 단순한 문자와 경교에 의거하지 않고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승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체험을 중시하여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종지를 주장한다.

내용

선종은 경전의 문자에도 한계를 정하고 또한 그 절대성을 부정한다. 불립문자는 문자에 의해서 드러난 개념은 결국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고, 물고기나 토끼를 잡는 통발이나 올무처럼 방편으로 간주하여 달을 잊는다든가, 손가락에 얽매이거나 물고기나 토끼를 잊고 통발이나 올무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불립문자는 개념의 실체화를 배척하는 것이지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자에 휩쓸리지 않고 도리어 문자를 활용한다는 뜻에서 결국 불리문자(不離文字)와 통한다. 더불어 교외별전은 선에서 경교(經敎)의 형식과 주의주장(主義主張)을 초월하여 불심의 정법안장(正法眼藏: 붓다의 깨달음)을 별도로 전승한다는 의미이지만, 그 밖에도 경전을 유일한 의지처로 삼는 경우에 교판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선의 본질에 해당하는 정법안장의 획득과 전승은 언설과 문자의 형식을 통해서는 직접적으로 접근할 수 없지만, 경전과 교리의 언설을 통하지 않고는 정법안장의 획득과 전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득불 언설과 문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경우에 체험과 자각을 통한 경우의 언설과 문자를 가리킨다.

“대혜여, 우리들 제불 및 제 보살은 한 글자도 설법한 적이 없고 한 글자도 답변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불법은 문자를 벗어나있기 때문에 이익이 되는 뜻과 설법 아님이 없다. 언설이란 중생의 망상이기 때문이다. 대혜여, 그러나 만약 일체법을 설하지 않는다면 교법은 곧 파괴된다. 교법이 파괴되면 모든 부처와 보살과 연각과 성문도 없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누가 설하고 누구를 위하겠는가. 이런 까닭에 대혜여, 보살마하살은 언설에 집착하지 말고 반드시 방편을 따라서 널리 경법을 설해야 한다.”(『능가경(楞伽經)』 권4, 『대정장』 16, p.506 하)

선종에서 특별히 확정된 소의경전을 제시하지 않는 것도 불립문자의 사상과 통하는데, 그것은 일체의 경전을 방편의 입장에서만 활용한다는 의미로서 선종에서 내세우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표출이기도 하다.

불립문자의 사상적인 배경으로는 “나는 어느 날 밤에 최상의 정각을 획득하였는데 그로부터 내지 어느 날 밤에 열반에 들어가기까지 그 중간에 내지 한 글자도 설하지 않고, 또한 설한 적도 없으며, 설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처럼 설법하지 않는 것이 곧 부처님의 설법이다.”(『능가경』 권3, 『대정장』 16, p.498)라는 말에 잘 드러나 있듯이 일체의 언설과 문자를 초월한 것에 불립문자의 진정한 뜻이 있다.

의의와 평가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상징은 영산회상(靈山會相)의 염화미소(拈花微笑), 다자탑전(多子塔前)의 분반좌(分半座), 사라수하(娑羅樹下)의 곽시쌍부(槨示雙趺) 등 다양한 일화로 전승된다.

“바가범이 정법안장 및 열반묘심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였다. 이로써 가섭이 제일조가 되었다. 이십팔조에 이르러 보리달마가 시방삼세제불의 밀인(密印)을 가지고 중국에 전승하였다. 그때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불법에 교외별전 · 불립문자 · 직지인심 · 견성성불의 도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임제록(臨濟錄)』, 『대정장』 47, p.495 상~중)라는 말은 달마로부터 불립문자의 사상이 중국 선종에 보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불립문자가 특별히 경전의 가르침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전 및 가르침에 대하여 집착하거나 관념에 빠지는 것을 경계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이러한 정신은 선법을 중국에 처음으로 전승한 달마에게도 이미 나타나 있다. “지금 선문에서는 불교가 동쪽으로 전승된 지 육백 년 후에 달마조사가 바야흐로 중국에 이르러서 문자를 내세우지 않고 단적으로 심인(心印)을 전승하고 곧바로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켜서 자성을 보아 성불토록 하였다. 이에 달마를 따르는 자는 일언지하에 무생법인(無生法忍: 불생불멸의 도리를 깨달아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경지)을 완전히 깨달았다.” (『조정사원(祖庭事苑)』 권8, 만속장 64, p.430 하)

이러한 불립문자의 전통이 특히 강조된 것은 육조 혜능의 문하인 남종(南宗)의 가풍이다. 나말여초에 남종의 선법을 계승한 구산선문(九山禪門)이 이후에 한국 선의 정통성을 확보하게 됨에 따라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전통은 고려조선을 거쳐 오늘에 이르도록 조사선풍의 사상적인 특징으로 정립되어 있다.

참고문헌

『능가아발타라보경(楞伽阿跋陀羅寶經)』
『임제록(臨濟錄)』
『조정사원(祖庭事苑)』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
『선가귀감(禪家龜鑑)』
『선문수경(禪文手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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