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칠종 ()

불교
개념
중국 당송대에 형성된 위앙종 · 임제종 · 조동종 · 운문종 · 법안종 · 황룡파 · 양기파 등 선종의 일곱 종파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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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오가칠종은 중국 당송대에 형성된 위앙종, 임제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황룡파, 양기파 등 선종의 일곱 종파를 가리킨다. 보리달마로부터 이조 혜가, 삼조 승찬, 사조 도신, 오조 홍인을 거쳐서 그 문하에서 신수의 북종선과 혜능의 남종선으로 분화되었다. 남종선은 당(唐) 말기에 중국 선종의 주류가 되었다. 혜능의 문하인 남악 회양 밑에서 위앙종과 임제종이 출현하고, 청원 행사 밑에서 조동종, 운문종과 법안종이 출현하였다. 황룡파는 황룡 혜남(1002~1069)에 의하여 임제종에서 분립된 종파이다. 양기파는 임제종 법맥인 석상 초원의 문하에서 분립된 종파이다.

정의
중국 당송대에 형성된 위앙종 · 임제종 · 조동종 · 운문종 · 법안종 · 황룡파 · 양기파 등 선종의 일곱 종파를 가리키는 불교용어.
연원 및 변천

오가는 흔히 선종 오가(禪宗五家)라 불리는데, 보리달마로부터 이조 혜가(慧可), 삼조 승찬(僧璨), 사조 도신(道信), 오조 홍인(弘忍)을 거쳐서 그 문하에서 신수(神秀)의 북종선과 혜능(慧能)의 남종선으로 분화되었다. 남종선은 중당 이후로 점차 번성하여 당 말에는 중국 선종의 주류가 되었다. 혜능의 문하인 남악 회양(懷讓) 밑에서 위앙종과 임제종이 출현하고, 청원 행사(靑原行思) 밑에서 조동종 · 운문종과 법안종이 출현하였다.

오가의 각 명칭은 처음 법안 문익이 저술한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서 “조동은 곧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작용을 삼았고, 임제는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선기를 삼았으며, 운문〔韶陽〕은 곧 함개건곤(函蓋乾坤)과 절단중류(截斷衆流) 등이고, 위앙은 곧 방원(方圓)과 묵계(黙契) 등이다.” (『만속장(卍續藏)』 63, p.37 하)는 대목에다 자신의 법안종을 더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내용
  1. 위앙종

위앙종(潙仰宗)은 남악 회양-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 회해(百丈懷海)-위산 영우(潙山靈祐)-앙산 혜적(仰山慧寂)으로 계승되는 법맥에서 위산과 앙산을 개조로 하는 종파로서 오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형성되었다. 두 조사가 주석했던 산의 앞 글자를 따서 종명으로 삼았다.

위산 영우는 당 원화 연간(806820) 초에 호남성 영향현 서쪽 대위산(大潙山) 동경사(同慶寺)에서 1,000여 명의 납자를 교화하였다. 그 제자 앙산 혜적은 건부 6년(879) 강서성 원주 노릉도 의춘현 앙산(仰山)에 들어가 그 종풍을 진작하였다. 오대(907959)에 일시적으로 번영했지만 송대에 쇠퇴하여 임제종에 흡수되면서 종적이 모호하게 되었다. 위앙종의 명맥은 약 15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위산의 종풍은 『위산어록(潙山語錄)』 및 『앙산어록(仰山語錄)』에 근거한 선풍으로서 선기와 작용이 준열하였고, 참언(讖言)과 관련된 법어도 크게 유향하였다. 그 제자 앙산이 계승하였는데, 남양 혜충(南陽慧忠)의 제자 탐원 응진(耽源應眞)의 가풍과 더불어 가미되었다.

신라의 오관산(五冠山) 요오순지(了悟順支: 807883)는 앙산과 탐원의 위앙종풍을 계승하여 신라에 전승시킴으로써 고려 중기까지 한때 번영하였다. 『조당집』에 기록된 순지는 위앙의 가풍으로 사대팔상(四對八相) · 양대사상(兩大四相) · 사대오상(四對五相) 등 표상현법(表相現法)을 통하여 교화하였고, 화엄사상을 응용한 돈증실제(頓證實際) · 회점증실제(廻漸證實際) · 점증실제(漸證實際) 등 삼편성불론(三遍成佛論)을 제시하였다. 고려 중기에 지겸(至(志)謙: 11451229)은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을 저술하여 위앙종풍을 현창하였다.

  1. 임제종

임제종(臨濟宗)은 남악 회양-마조도일-백장 회해-황벽 희운(黃檗希運)-임제 의현(臨濟 義玄)으로 계승되는 법맥에서 의현를 개조로 한다. 의현은 득법한 이후에 하북성 진주 임제원(臨濟院)에 주석하면서 부주(府主)였던 왕상시(王常侍) 등의 외호를 받으면서 무위진인(無位眞人)의 선풍을 간명직절(簡明直截)한 언설로 널리 떨쳤다.

납자를 교화하는 다양한 방식을 창출하였는데, 『임제어록(臨濟語錄)』에 근거를 두고 삼구(三句) · 삼현(三玄) · 삼요(三要) · 사요간(四料揀) · 사빈주(四賓主) · 사조용(四照用) · 사대식(四大式) · 사할(四喝) · 팔방(八棒) 등이 널리 활용되었다. 선종오가 가운데서 오랫동안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여 이후에 황룡파(黃龍派)와 양기파(楊岐派)로 분립되었다.

임제종은 고려초에 혜조국사(慧照國師) 담진(曇眞)원응국사(圓應國師) 학일(學一 : 1052~1144) 등에 의하여 수입되었다.

  1. 조동종

조동종(曹洞宗)은 청원 행사(靑原行思)-석두 희천(石頭希遷)-약산 유엄(藥山惟儼)-운암 담성(雲巖曇晟)-동산 양개(洞山良价)-조산 본적(曹山本寂)으로 계승되는 법맥에서 동산과 조산을 개조로 하는 종파이다. 종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조사가 주석했던 산명을 도치하여 부른 것이라는 설과 조산이 조계혜능을 상징한다는 설이 있다. 동산 양개(807869)는 강서성 고안현에서 선풍을 고취하였고, 그 제자 조산 본적(840901)은 강서성 하옥산에서 종풍을 거양하였다.

조동종의 종풍은 『동산어록(洞山語錄)』 및 『조산어록(曹山語錄)』 등에 근거하여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위의섬세(威儀纖細)하다. 사상적 특징으로는 오위(五位)가 있으며, 수행가풍으로는 좌선을 중시하였으며, 송대 중기에 묵조선(黙照禪)의 수행가풍을 출현시켰다. 조동종의 법맥은 조산의 계통은 일찍이 단절되었고, 동산의 제자인 운거 도응(雲居道膺: 828~902)의 계통으로 전승되었다.

특히 운거도응의 문하에서는 나말여초에 한국의 선사 20여 명이 법을 이어 고려 초기에 조동 종지를 크게 진작하였다. 고려 일연『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는 조동종의 오위사상의 집대성이었고, 조선 김시습『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는 중국 조동종 계통의 동안상찰(同安常察)의 『십현담(十玄談)』에 대한 주석서로 유명하다.

  1. 운문종

운문종(雲門宗)은 청원 행사-석두 희천-천황 도오(天皇道悟)-용담 숭신(龍潭崇信)-덕산 선감(德山宣鑑)-설봉 의존(雪峰義存)-운문 문언(雲門文偃)으로 계승되는 법맥으로 운문문언에 의하여 개종되었다. 문언은 목주 도명(睦州道明) 및 설봉 의존 등에게 참문하여 설봉의 법을 잇고, 광동성 소주 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선풍을 거양하였다.

운문종의 종풍은 『운문광록(雲門廣錄)』에 근거하여 운문삼구(雲門三句) · 추고(抽顧) · 일자관(一字關) · 파릉삼구(巴陵三句) 등을 통하여 선기는 엄격하였고, 언구는 간결하였다. 북송대에는 사회의 상층 계급의 사람들과 교유가 많아서 임제종과 함께 가장 번성하였지만 남송대에는 쇠퇴하였다.

고려 중기에 『설봉어록(雪峰語錄)』의 수입과 함께 설봉의 제자인 복청 현눌(福淸玄訥) · 대무위(大無爲) · 용화 영조(龍華靈照) 등이 활약하여 운문 계통의 가풍이 유행하였다.

  1. 법안종

법안종(法眼宗)은 운문종과 같은 계통인 설봉 의존-현사 사비(玄沙師備)-나한 계침(羅漢桂琛)-법안 문익(法眼文益)〔淸凉文益〕으로 계승되는 법맥으로 법안 문익(885~958)에 의하여 개창되었다. 득법한 이후에 법안은 강소성 승주 청량원(淸凉院)에 주석하면서 오월왕 전홍숙(錢弘俶)의 외호를 받아 선풍을 널리 고취하였다.

법안종의 종풍은 『법안어록(法眼語錄)』에 근거하면서도 유식학 · 천태학 · 화엄학 · 정토학 등을 두루 섭수하여 선종의 정체성이 오래도록 유지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법안종의 영안 도원(永安道原)은 『경덕전등록』 30권을 편찬하여 공안에 대하여 비평을 붙이는 전통을 유행시켰다. 법안종의 제2대 천태 덕소(天台德韶)는 선과 천태를 융합하였고, 제3대 영명 연수는 선과 정토염불을 융합하여 이후에 제종융합의 전통을 보여주었다.

고려 초기에 광종은 스스로 영명 연수의 제자를 자청하여 법안종의 수입에 힘쓴 결과 영명 연수의 법안종풍이 36명의 고려 유학승들에 의하여 일시적으로 풍미하였다. 이들 선종오가의 분파는 지역과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서 종지의 차이가 아닌 종풍의 차이에 근거한 것이다. 중국 선에서 선종 오가가 형성되던 9세기 중반부터 10세기 중반에 걸친 동시대인 나말여초에 한국 선에서는 구산선문이 형성되었는데, 마지막 수미산문(須彌山門)의 경우만 중국의 선종오가의 영향을 받았다.

  1. 황룡파

황룡파(黃龍派)는 임제 의현-흥화 존장(興化存獎)-남원 혜옹(南院慧顒)-풍혈 연소(風穴延沼)-수산 성념(首山省念)-분양 선소(汾陽善昭)-석상 초원(石霜楚圓)-황룡 혜남(黃龍慧南)으로 계승되는 법맥으로 황룡 혜남(1002~1069)에 의하여 임제종에서 분립된 종파이다. 혜남은 경우 1036년에 강서성 융흥부 황룡산에 주석하면서 동림 상총(東林常總) · 진정 극문(眞淨克文) · 회당 조심(晦堂祖心) 등을 배출하였고, 문인 및 사대부 등과 교유하면서 강서성을 중심으로 선풍을 진작하였다. 남송이 되면서 양기파에 압도되어 점차 쇠퇴하였다.

혜남은 납자들에게 자기가 태어난 인연〔生緣〕과 자기의 손이 부처님 손과 닮았다는 것〔佛手〕과 자기의 다리가 나귀의 다리와 닮았다는 것〔驢脚〕 등 세 가지 질문을 통하여 그에 상응하는 교화를 베풀어주었던 황룡삼관(黃龍三關)으로 유명하다.

  1. 양기파

양기파(楊岐派)는 황룡파와 같은 임제종 법맥인 석상 초원의 문하에서 분립된 종파이다. 득법한 이후에 강서성 양기산에 주석하면서 교화를 펼쳐서 백운 수단(白雲守端) 및 보령 인용(保寧仁勇) 등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이후의 법맥은 양기 방회(楊岐方會)-백운 수단(白雲守端)-오조 법연(五祖法演)-원오 극근(圜悟克勤)으로 계승되었고, 원오 극근으로부터 대혜 종고(大慧宗杲)의 대혜파와 호구 소륭(虎丘紹隆)의 호구파로 분화되었다. 양기파는 황룡파의 뒤를 이어서 남송대부터 가장 번성하여 중국의 선종을 주도하면서 전개되었다. 특히 대혜 종고 때에는 간화선(看話禪)이 확립되어 조동종의 묵조선과 더불어 조사선의 새로운 선수행의 풍토를 형성하였다.

호구 소륭의 법맥은 응암 담화(應庵曇華)-밀암 함걸(密庵鹹傑)-파암 조선(破庵祖先)-무준 사범(無準師範)-설암 조흠(雪岩祖欽)-급암 종신(及庵宗信)으로 계승되었고, 급암으로부터는 다시 석옥 청공(石屋淸珙)-고려의 태고 보우(太古普愚)가 법을 이었고, 평산 처림(平山處林)으로부터는 다시 고려의 나옹 혜근(懶翁慧勤)이 법을 이어서 고려말에 양기파의 선풍을 수입하였다. 일찍이 고려 중기에는 임제종 양기파의 선풍이 수입되어 그 사상과 간화선의 수행법 등이 보조 지눌(普照知訥)로부터 이후에 한국의 선종에 널리 전승되었다.

이들 선종오가의 종풍의 특색 내지 법맥의 정통 등에 대하여 정리한 책으로는 동령원자(東嶺 圓慈)의 『오가참상요로문(五家參詳要路門)』, 법안 문익(法眼文益)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 삼산 등래(三山燈來)의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 희수 소담(希叟紹曇)의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호관 사련(虎關師鍊)의 『오가변(五家辨)』, 회암 지소(晦巖智昭)의 『인천안목(人天眼目)』, 명교 설숭(明敎契嵩)의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가 있다.

의의와 평가

고려 때는 진정 천책(眞靜天頙)『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이 있지만 임제종 중심에다 약간의 운문종을 언급하는데 그쳤다. 조선 중기에 청허 휴정『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선종오가의 법맥 및 교의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조선후기 환성 지안(喚醒志安: 1664~1729)은 선종오가에 대하여 각 종파 및 교의 등을 정리한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를 저술하여 오종 각각에 대한 종지를 평가하였다.

위앙 종지에 대해서는 체(體)와 용(用)을 해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스승과 제자가 노래로 화답하고 부자가 일가를 이루며 옆구리에 글자를 끼고 서로 두각(頭角)을 다툰다. 실중(室中)에서 제자를 점검하여 잘 사자를 가려낸다. 이사구(離四句)하고 절백비(絶百非)하여 한 주먹에 쳐부수며, 입은 두 개이고 혓바닥은 한 개도 없지만 구곡주(九曲珠)를 꿰뚫는다.”고 평가하였다.

임제 종지에 대해서는 기(機)와 용(用)을 해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맨손에 단도를 들고 살불살조(殺佛殺祖)하며, 현(玄)과 요(要)에서 고금을 분별해 내고, 주(主)와 빈(賓)에서 용과 뱀을 골라내며, 금강보검을 쥐고서 대나무에 붙은 정령을 쓸어버리며, 사자의 위용을 떨치고 이리의 심장과 쓸개를 찢어버린다.”고 평가하였다.

조동 종지에 대해서는 향상(向上)의 도리를 해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방편으로 오위(五位)를 열어 삼종 근기를 잘 제접한다. 금강왕보검을 비켜 차고 모든 견해의 수풀을 베어버린다. 묘협(妙挾)을 널리 펴서 온갖 번뇌를 잘라버린다. 위음나반은 눈 가득 번쩍거리고 공겁이전은 항아리속의 풍월이다.”고 평가하였다.

운문 종지에 대해서는 절(截)과 단(斷)을 해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검(劍)과 봉(鋒)의 끝에 길이 있고, 철벽과 같아 나아갈 문이 없으며, 높이 치켜세워 뒤집어 길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갈등을 싹뚝 잘라버린다. 그러므로 상식의 견해로 보자면 너무 신속하여 미칠 수가 없으니 분별사량의 불꽃으로 어찌 발이나 붙여보겠는가.”라고 평가하였다.

법안 종지에 대해서는 유심(唯心)을 해명하는 것이라 말하고, “언(言) 속에 울림이 있고 구(句) 속에 칼을 감추고 있으며, 촉루로 항상 세계를 방어하고 콧구멍으로 가풍을 갈아낸다. 바람을 일으키는 도리깨와 달빛을 머금은 모래섬에서 진심을 드러내고, 푸른 대나무와 노란 꽃은 묘법을 뚜렷하게 드러낸다.”고 평가하였다.

조선 말기에 백파 긍선(白坡 亘璇)은 환성 지안(喚惺志安)의 『선문오종강요』에 주석을 붙인 『선문오종강요사기(禪門五宗綱要私記)』를 저술하여 선종오가의 교의에 대한 요목을 정리하고 비평하였다.

참고문헌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
『인천안목(人天眼目)』
『오가참상요로문(五家參詳要路門)』
『오가종지찬요(五家宗旨纂要)』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오가변(五家辨)』
『전법정종기(傳法正宗記)』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
『선문오종강요(禪門五宗綱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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