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靈照)는 고려 초 활동한 승려이며 호는 제운(齊雲) 또는 진각(眞覺)이다. 870년(경문왕 10)에 출생하여 947년(정종 2)에 입적하였다. 주1 말에 저장성 항저우(杭州) 일대로 가서 주2을 구하다가 설봉(雪峰)을 찾아 선법의 대의를 묻고 수도하였으며, 설봉의 밑에서 주4 법을 전해 받았다. 설봉(822~908)은 복주에서 따르는 학자가 천오백인이 넘고, 문하에 운문문언(雲門文偃, 864∼949), 현사종일(玄沙從一, 831908), 보복종전(保福從展, ?928),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 경청도부(鏡淸道怤, 868936) 등의 주8이 배출된 대덕이다.
또한, 영조는 청원행사(淸原行思)의 7세손이 되었다. 청원행사는 육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선종 계열 중 하나인 주5의 인물이다. 영조는 누더기 한 벌을 걸치고 대중을 위한 여러 가지 일을 사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포납(照布衲, 누더기스님)이라고 불렀다.
설봉의 법맥을 이은 뒤 경청원(鏡淸院)에 머물다가 후주태수(湖州太守) 전공(錢公)이 보자원(報慈院)을 창건하여 그를 모셨으며, 다시 전공이 용화사(龍華寺)를 창건하여 주지직을 맡겼다. 그는 이 절에서 선법을 전하다가 주6 한다. 그리고 중국 주7 시대 10국 중 하나인 오월국(吴越国, 907~978)의 왕은 그를 내도량(內道場)으로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청하였다.
78세에 입적하였으며 탑은 항저우 대자산(大慈山)에 세워졌다.
영조의 법문 중 일부가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