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보문종의 총본산이다. 1115년(예종 10)에 담진(曇眞)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조선시대 수도 성 밖의 네 주1중 하나였다. 서울의 낙산 아래 동망봉을 경계로 청룡사, 미타사 등 비구니 도량이 군집해 있어 탑골 승방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극락보전은 건륭 12년(1747, 조선 영조 23년) 최초 주2, 도광 4년(1824, 순조 24년) 1차 중수, 동치 4년(1865, 고종 2년)에 2차 주3이 밝혀졌다. 퇴경전서에 의하면 1826년에 수봉법총(秀峰法聰) 스님이 만세루를 신축하였으며, 1827년에 정운(正雲) 스님이 좌우 승당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1842년에는 영전(永典) 스님이 만세루를 수리하고, 1872년에 금훈(錦勳) 스님이 좌우 승당을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1800년대부터 비구니들이 상주하며 수행한 사실이 확인된다. 일제 시기 황폐해진 이 절을 이후 비구니 은영(恩榮)이 주지로 취임하면서 30여 년간 크게 중창하였다. 원래는 조계종 산하의 소속 사찰이었으나 1972년 독립하여 비구니 종단인 보문종을 창종하고 보문종의 본산이 되었다.
현존하는 주4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극락전 · 석굴암 · 호지문 · 선불장(選佛場) · 보광전(普光殿) · 산령각(山靈閣) · 석굴암노전(石窟庵爐殿) · 삼성각(三聖閣) · 별당 · 주5, 한의원 및 특별 양로원이 있는 시자원(施慈園)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굴암은 은영이 그 분야의 권위자를 모아 준공 위원회를 구성하여 조각과 설계를 하였고, 공사비만 1억을 들여 1972년 부처님 오신 날에 착공하였으며 3년 6개월의 역사 끝에 점안식을 가졌다. 경주 석굴암과 똑같은 규모로 만들었으나, 구성 면에서 볼 때 경주 석굴암은 정면이 1문인 데 비하여 이곳은 3문이며, 실내 벽을 이중으로 만들고 실내 천장으로 공기가 유통되게 하였다. 단지, 경주 석굴암의 전실에 있는 팔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이곳에서는 생략하고 있다.
특기할 만한 오래된 문화유산은 없으나 석굴암 앞의 높은 단 위에 세워진 팔각 구층석탑은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팔각 구층석탑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탑 안에는 인도에서 가져온 석가여래 진신 주6가 봉안되어 있다. 이 절은 세계 유일의 비구니들만으로 구성된 보문종의 총본산으로서 언제나 150명이 넘는 비구니들이 주7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도의 분위기가 특히 엄숙한 도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