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북도주1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하였으며 복흥사(福興寺)로도 기록되어 있다. 고려 전기 화엄종 고승인 원융국사(圓融國師) 결응(決凝)이 975년에 복흥사(福興寺) 관단(官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는 사실이 전하여 이곳이 고려 전기 관단 사원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단은 승려를 출가시키기 위해 나라에서 마련한 계단(戒壇)을 말한다.
1066년(문종 20)에는 복흥사에 김은부(金殷傅)의 둘째 아들인 경덕국사(景德國師) 난원(爛圓)의 비와 탑이 건립되었다. 『동문선(東文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는 오학린(吳學麟)과 변계량(卞季良) 등이 이 절에서 묵으며 노래한 시가 전하고, 『기언』에는 쌍석탑(雙石塔)이 남아 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이 외에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고, 조선 중기 이후에 폐허화되었으며 폐사지에는 법당 터의 주춧돌과 삼층석탑, 2기의 석재, 부도(浮屠), 귀부(龜趺) 등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