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풍 복흥사 ( )

목차
관련 정보
불교
유적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한 고려 전기 관단이 운영된 사찰이자 혜덕왕사의 탑비가 건립된 사찰.
이칭
이칭
복흥사(福興寺)
유적/건물
건립 시기
고려전기 이전
소재지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한 사찰로, 고려 전기 화엄종 고승인 원융국사 결응(圓融國師決凝)이 이곳에서 구족계를 받았고, 경덕국사 난원(景德國師爛圓)의 비와 탑이 건립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국가의 중요한 사찰로 운영되었으나, 조선시대 들어서 점차 폐허화된 것으로 보인다.

목차
정의
황해북도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한 고려 전기 관단이 운영된 사찰이자 혜덕왕사의 탑비가 건립된 사찰.
역사적 변천

황해북도주1 개풍군 영북면에 위치하였으며 복흥사(福興寺)로도 기록되어 있다. 고려 전기 화엄종 고승인 원융국사(圓融國師) 결응(決凝)이 975년에 복흥사(福興寺) 관단(官壇)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는 사실이 전하여 이곳이 고려 전기 관단 사원으로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단은 승려를 출가시키기 위해 나라에서 마련한 계단(戒壇)을 말한다.

1066년(문종 20)에는 복흥사에 김은부(金殷傅)의 둘째 아들인 경덕국사(景德國師) 난원(爛圓)의 비와 탑이 건립되었다. 『동문선(東文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는 오학린(吳學麟)과 변계량(卞季良) 등이 이 절에서 묵으며 노래한 시가 전하고, 『기언』에는 쌍석탑(雙石塔)이 남아 있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이 외에 자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고, 조선 중기 이후에 폐허화되었으며 폐사지에는 법당 터의 주춧돌과 삼층석탑, 2기의 석재, 부도(浮屠), 귀부(龜趺) 등이 있다고 한다.

참고문헌

원전

『부석사원융국사비(浮石寺圓融國師碑)』
『복흥사경덕국사묘지명(福興寺景德國師墓誌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주석
주1

광복 이후 북한이 신설한 도의 하나. 1954년 10월에 황해도의 사리원, 송림, 황주군, 서흥군, 봉산군, 수안군, 곡산군, 평산군, 금천군을 합하여 신설하였다. 도청 소재지는 사리원. 우리말샘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