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허 휴정(1520∼1604)은 태고(太古) 법통의 적전을 잇는 조선 시대의 대표적 고승이다. 명종 대에 승과 급제 후 선교양종의 판사를 지냈고 1592년 임진왜란 때 8도 도총섭으로 의승군을 일으켰다. 조선 후기 최대 계파인 청허계의 조사로서 간화선(看話禪) 우위의 선교겸수를 주창하면서 선, 교, 염불을 종합한 삼문 수행 체계의 틀을 제시하였다. 저술로는 본서 외에도 『청허당집(淸虛堂集)』,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결(禪敎訣)」, 「선교석(禪敎釋)」, 「심법요초(心法要抄)」 등이 있다.
1권 1책. 목판본. 1579년에 지리산 신흥사(新興寺) 초간본에는 사명 유정(四溟惟政, 1544∼1610)의 발문이 붙어 있다.
이후 여러 번 판각되었는데 1590년에 유점사(楡岾寺), 1604년에 원적사(圓寂寺), 1607년과 1618년에 송광사(松廣寺), 1633년에 용복사(龍腹寺), 1649년에 통도사(通度寺), 1701년에 봉암사(鳳巖寺), 1731년에 보현사(普賢寺) 등에서 간행되었다. 언해본은 1610년에 전라도에서 간행한 목판이 송광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은 일본에도 전래되어 1630년대와 1670년대에 5번 간행되었다. 17세기 말에는 선종 5가 부분에 대해 일본 임제종 승려 고린 젠이(虎林全威)가 『선가귀감오가변(禪家龜鑑五家辯)』을 저술하였다. 또한 저자 및 연대 미상의 주석서 『선가귀감고(禪家龜鑑考)』도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책은 현재 고려대학교 도서관, 동국대학교 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일본 고마자와(駒澤) 대학 등에 소장되어 있다.
1564년 여름에 휴정은 저술을 완료하고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서 서문(序文)을 썼다. 1579년에 신흥사에서 간행된 한문본이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지만, 이보다 10년 앞서 1569년에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언해본이 먼저 나왔다. 언해는 휴정의 제자 금화도인(金華道人) 의천(義天)이 주관했고 휴정의 동문 부휴 선수(浮休善修, 1543∼1615)가 교정을 보았다. 한문본은 『선가귀감』을 간추려 낸 것으로 의천은 한문본 교정에도 참여했다.
『선가귀감』은 간화선 수행법, 선종 5가의 선풍과 임제종의 종지, 선교겸수의 지향, 염불과 계율, 진언 다라니 문제 등을 다루었고 지해(知解)를 타파하는 것이 선 수행의 요체임을 강조한 책이다.
휴정은 이 책에서 유불도 삼교의 근원인 심(心)을 내세워 부처가 마음을 전한 것이 선이고 이를 말로 나타낸 것이 교라고 보았다. 선에 대해서는 하나의 화두(話頭)를 의심하고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법을 제시했고,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위앙종(潙仰宗), 법안종(法眼宗)의 선종 5가 가운데 임제종의 우월함을 강조하였다. 또 교는 인천교(人天敎)‚ 소승교(小乘敎)‚ 대승교(大乘敎)‚ 돈교(頓敎)‚ 원교(圓敎)로 구분하였다. 또한 경절문(徑截門), 원돈문(圓頓門), 염불문(念佛門)의 삼문을 세워 선, 교, 염불을 겸수하는 수행 체계의 틀을 제시했다.
휴정은 간화선의 우위를 전제로 하면서도 선과 교를 아우르는 단계적 수행 방안을 제시했다. 교학을 수행의 입문으로 하지만 일정한 단계가 되면 지해(知解)에 얽매이지 말고 간화선의 화두를 참구해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는 논지이다. 이는 『선가귀감』에 나오는 ‘방하교의(放下敎義) 참상선지(參詳禪旨)’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그는 “먼저 진실된 가르침에 의해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의 두 뜻이 곧 마음의 성상(性相)이고 돈오(頓悟)와 점수(漸修)의 두 문이 수행의 처음과 끝임을 판별한 후에 교의 뜻을 내려놓고 [방하교의] 오로지 마음에 드러난 한 생각으로 선의 요지를 참구[참상선지]하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다. 이것이 이른바 출신활로(出身活路)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승려 교육 과정의 사집과(四集科)에 들어간 종밀(宗密)의 『도서(都序)』, 지눌(知訥)의 『절요(節要)』, 고봉 원묘(高峰原妙)의 『선요(禪要)』를 비롯하여, 여말 선초 간화선 수행법에 큰 영향을 미친 몽산 덕이(蒙山德異)의 『어록(語錄)』, 그리고 고려 후기 진각 혜심(眞覺慧諶)의 『선문염송(禪門拈頌)』과 천책(天頙)의 찬으로 알려진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종 5가 선풍의 요체를 담은 송대 지소(智昭)의 『인천안목(人天眼目)』 등 선 관련 불서들이 다수 인용되었다. 인용서의 내역에서도 간화선 풍을 중시하면서 선교겸수의 방향을 용인한 휴정의 선교관을 엿볼 수 있다.
『선가귀감』은 휴정이 당시 선과 교의 갈등을 극복하는 바른 수행 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쓴 것으로 선종을 중심으로 한 불교 이해의 지침서 성격을 지닌다. 휴정은 『선가귀감』에서 간화선 우위의 선교겸수 방안을 제시했고 선, 교, 염불을 아우르는 삼문 수행 체계의 기본 틀을 마련함으로써 조선 후기 불교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임제종에서도 중시되어 몇 차례 간행이 이루어지고 주석서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