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대 승과에 합격하였다. 1189년에 등고사(登高寺)의 주지가 되었으며 삼중대사(三重大師), 선사, 대선사(大禪師) 등에 차례로 올랐다. 욱금사(郁錦寺)에서 주2, 진례군(進禮郡)에서 개설한 법회에 왕명으로 주맹(主盟)으로 내려갔으며 1208년(희종 4)에 주3가 극심하였을 때 궁궐에서 주4을 하여 비가 쏟아지게 하였다는 법력에 관한 일화가 전한다. 후에 개경 일대 주요 사찰인 국청사(國淸寺)에서 주석하였다.
강종이 즉위하여서는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의 추천으로 국사에 책봉되었다. 궁궐에서 가까운 광명사(廣明寺)에 거처하면서 원주 거돈사(居頓寺)를 본사(本寺)로 하여 주5의 경비를 충당하도록 하였다. 강종이 사망하고 고종이 즉위하여 지겸을 또 한 차례 스승으로 높였다. 1219년(고종 6)에 퇴거를 청하여 화장사(花藏寺)로 들어갔고 이때에도 최충헌이 예우를 다하였다. 입적한 뒤에는 정각국사(靜覺國師)로 주6.
한편 지겸은 중국 선문의 주8에 관한 옛 기록을 수집하여 1219년에 『종문원상집(宗門圓相集)』을 간행하였다. 이 책의 주7은 수선사 3세 사주 몽여가 지었다. 이러한 선적은 수선사는 물론이고 고려 선종계에서 송대 선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았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