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

불교
문헌
중국의 정과 균이 중국과 한국 선종의 역사와 선사들의 전기를 기록하여 952년에 간행한 불교서.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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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조당집』은 중국의 정과 균이 중국과 한국 선종의 역사와 선사들의 전기를 기록하여 952년에 간행한 불교서이다. 조(祖)란 ‘조사(祖師)’를 가리키며, 당(堂)은 ‘깊은 뜻’이란 의미로, ‘선종 조사들의 깊은 가르침을 모은 책’이란 의미이다. 이 책은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과거칠불에서부터 중국 당오대(唐五代)까지의 선사 253명의 행적과 법어·게송 등을 담고 있다. 『조당집』은 6조 혜능 이후 선종오가의 역사와 신라시대의 승려 10명에 대한 전기도 들어있다. 『조당집』은 우리나라 구산선문의 원류를 밝힐 수 있는 한국 선종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정의
중국의 정과 균이 중국과 한국 선종의 역사와 선사들의 전기를 기록하여 952년에 간행한 불교서. 전기.
개설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과거칠불(過去七佛)에서부터 중국 당오대(唐五代)까지의 선사 253명의 행적과 법어·게송 등을 담고 있는 등사(燈史: 선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952년 남당(南唐)의 천주(泉州)에서 편찬되었으며 편저자는 정과 균 두 선사이다.

정·균 두 선사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이 책에 서문을 쓴 정수문등(淨修文僜)의 제자로 생각된다. 책이 편찬된 이후 중국에는 전해지지 않다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 보유판(補遺版)에 존재한다는 것이 처음 알려졌다. 따라서 고려대장경본이 유일본이다.

편찬/발간 경위

중국 남당(南唐)의 천주(泉州) 초경사(招慶寺)의 정·균 두 선사가 952년에 편찬하였으며, 당시 초경사의 주지였던 정수문등이 서문을 썼다. 문등은 설봉의존(雪峰義存, 822∼908)의 제자였고, 정·균 두 선사도 설봉의 문하였다. 설봉의 문하에 모인 사람들이 옛날 자신이 수행하던 지역의 선사들을 자주 거론하였으므로 정과 균이 이를 수집하여 책으로 엮어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찍부터 중국에서는 산일(散逸)되어 전하지 않다가, 고려시대인 1245년(고종 32)에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에서 고려대장경의 보유판으로서 간행되었다. 고려대장경본에는 광준(匡俊)의 서문이 붙어 있는데, 그것에 의하면 1권이 이전에 이미 유포되었으며, 나중에 10권이 또 들어왔기에 이를 합쳐서 20권으로 편찬하였다고 한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으로 변란(邊欄)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전곽(全郭)의 크기는 세로 21.0㎝, 가로 52.0㎝이다. 계선(界線)은 없고 28행 18자이다. 권1의 말미에 ‘乙巳(1245)歲 分司大藏都監 雕造’라는 간기가 붙어있다.

내용

『조당집』에서 조(祖)란 ‘조사(祖師)’를 가리키며, 당(堂)은 ‘당오(堂奧)’ 즉 ‘깊은 뜻’이란 의미이다. 결국 『조당집』이란 ‘선종 조사들의 깊은 가르침을 모은 책’이란 의미이다.

이 책은 인도에서 중국 당오대까지의 선종의 계보를 기록한 것인데, 서천28조(西天二十八祖)와 중국 동토6조(東土六祖)에 이르는 선의 흐름과 6조 혜능 이후 선종오가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1권에는 과거칠불에서 제16조 라후라(羅睺羅) 존자에 이르는 23인의 행적과 법어 및 게송이 실려 있다. 2권에는 제17조 승가난제(僧伽難提) 존자에서 제28조 보리달마(菩提達磨) 문하의 6조 혜능(慧能)까지 실려 있다. 3권에는 제4조 도신(道信)과 제5조 홍인(弘忍)의 문하에서 갈라져 나온 우두(牛頭)·나찬(懶瓚) 등 모두 8명이 실려 있다. 4∼13권에는 혜능의 제자인 청원행사(靑原行思)와 석두희천(石頭希遷) 계통의 선사 96명이, 14∼20권에는 남악회양(南嶽懷讓)과 마조도일(馬祖道一) 계통의 선사 83명이 각각 실려 있다.

뿐만 아니라 신라시대의 승려 10명에 대한 전기도 들어있는데, 신라 승려에 대한 전기가 원래 중국에서 편찬될 때부터 들어있었는지, 아니면 고려대장경 보유판으로 간행될 때 증보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10명은 대부분 중국에 유학한 승려들이며, 대부분이 비문(碑文)에 근거한 짧은 기록인데 반해 순지(順之)에 대해서는 대단히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당집』은 『조계대사전』(曹溪大師傳, 781년경 간행)·『보림전』(寶林傳, 801년경 간행)을 뒤이어 중국 선종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데, 특히 서천28조설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천28조설이란 “원래 선은 석가모니가 마하가섭에게 처음 전하여 가섭이 제1조가 되었고, 이것이 대대로 전해져서 보리달마가 제28조가 된다.”라는 학설이다. 서천(西天)이란 인도를 가리킨다. 이러한 인도의 선이 보리달마에 의해 중국에 전해져서 6조 혜능에게 이어진다는 것이 동토 6조설이다.

그런데 서천28조설이란 역사적 사실이 아니며 선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중국에서 창작된 것이다. 이와 같이 『조당집』에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들이 많은데, 각종 예언이나 설화 같은 것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또 『조당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의문점이 여전히 남아있다.

  1. 『조당집』은 왜 중국에서 일찍이 산일되었는가?

952년에 편찬된 『조당집』은 간행 후 바로 산일되어 중국에 전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1004년에 간행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이 같은 성격의 등사(燈史)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경덕전등록』은 관찬(官撰)의 역사서로서 황제의 서문을 실은 공식적인 기록이었다. 따라서 같은 중국선종 오가(五家)의 역사를 기록한 『조당집』은 기능을 상실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중국에서 산일되었던 『조당집』은 1912년 일본인 학자 간노 사다[關野貞]와 오노 겐묘[小野玄妙]가 해인사에서 고려대장경 판본을 조사하다 처음 발견하였는데, 고려대장경본이 세계 유일의 귀중본으로서 대단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1. 『조당집』의 편찬자는 누구인가?

『조당집』의 편찬자는 정(靜)·균(筠) 두 선사라고 본문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정·균에 대해서는 문등선사의 제자라는 것 이외의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다. 나아가 중국의 역사서에서 편찬자의 이름을 한 글자만 기록하는 것도 대단히 예외적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정·균이 한국의 승려라는 설도 있으나 근거가 희박하다.

  1. 『조당집』에 신라 승려 10인을 넣은 것은 중국에서인가 고려에서인가?

『조당집』에는 총 10명의 신라 승려가 입전(入傳)되어 있는데, 제11권에 영조(靈照)와 현눌(玄訥), 제17권에 도의(道義)·혜철(慧徹)·홍척(洪陟)·현욱(玄昱)·범일(梵日)·무렴(無染)·도윤(道允)의 7인이, 제20권에 순지(順之)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이들 10인은 모두 중국에 유학한 승려들로서, 순지를 제외한 9인에 대해서는 비문에 근거하여 짧게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순지에 대해서만은 권20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사상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야나기다 세이잔[柳田聖山] 교수는 “『조당집』은 위앙종(潙仰宗) 계통의 문헌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라 승려 10인에 대한 입전이 중국에서 최초로 간행될 당시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1245년에 고려대장경의 보유판으로서 간행될 때 증보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의의와 평가

『조당집』은 당오대까지의 중국 선종의 역사를 아는데 있어서 긴요할 뿐만 아니라, 당시의 문화·예술·언어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원류를 밝힐 수 있는 신라 선승들의 행장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 선종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선학사전』(이철교 외, 불지사, 1995)
「『조당집』의 증보에 관한 논란의 부정적 시각: 동국선사장의 내적비판을 중심으로」(변인석, 『한국고대사탐구』16, 2014)
『新版 禪學大辭典』(禪學大辭典編纂所 編, 大修館書店, 1978)
집필자
정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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