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요는 경론의 근본적인 종지(宗旨)나 사물의 본질적인 요체(要諦)를 일컫는다.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의 『법화현의』 권1에서는 ”줄의 벼리 밧줄[綱維]를 당기는 것 같아서 눈금이 없으면 움직이지 아니하고, 옷의 한 귀퉁이[一角]을 잡아당김과 같아서 끈이 없으면 오지를 않으므로 종요(宗要)라 한다”고 하였다. 가상 길장(嘉祥吉藏: 549623)의 『삼론현의』에 분과와 주석을 한 『삼론현의과주』에서는 “종(宗)은 주종(主宗)이 되고, 요(要)는 간요(肝要)가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종요에서 ‘종’은 주장의 근본이 되고, ‘요’는 요목의 요체가 된다.
분황 원효(芬皇元曉: 617~686)는 경전의 주석서를 쓰면서 이 종요의 개념을 즐겨 사용하였다. 그는 종요에는 전개[開]와 종합[合]의 뜻이 있다고 하였다. 즉 원효는 ‘종’은 전개하여 말한다면 열 가지의 법문[十重法門]이 종지가 되고, ‘요’는 종합하여 말한다면 일미의 관행[一味觀行]이 요체가 된다고 풀고 있다. 관행에서 ‘관’은 가로로 논하는 것으로서 ‘경(境)'과 ‘지(智)'에 통하고, ‘행(行)'은 세로로 바라본 것으로서 ‘인(因)'과 ‘과(果)'에 걸쳐 있다. ‘과’는 오법(五法)이 원만함을 말하는 것이고, ‘인’은 육행(六行)이 잘 갖추어짐을 말하며, ‘지’는 곧 본각과 시각의 두 깨달음이고, ‘경’은 곧 진과 속이 없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원효는 ‘종’과 ‘요’의 상위 개념을 전제로 하위의 개념들을 조직해 나간다. 즉 진과 속이 함께 없어졌지만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고, 본각과 시각 두 가지로 깨달았지만 생긴 것이 없으니, 무생(無生)의 행은 그윽이 무상에 계합하고, 무상(無相)의 법은 본각의 이익을 순조롭게 이룬다. 이익이 이미 본각의 이익[本利]으로서 얻음이 없기 때문에 실제(實際)를 움직이지 아니하고, 제가 이미 실제로서 자성을 떠났기 때문에 진제 또한 공허하다. 모든 부처와 여래가 여기에 간직되어 있으며, 모든 보살도 이 가운데에 따라 들어가니, 이러한 것을 여래장(如來藏)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것이 여섯 품의 대의다.
이 관의 문에서 처음의 신해(信解)로부터 등각(等覺)에 이르기까지 육행을 세운다. 육행이 만족될 때 아홉 가지 식이 전변하거나 현현하니, 무구식(無垢識)을 현현시켜 청정한 법계를 삼고, 나머지 여덟 가지[八識]을 전변시켜 네 가지 지혜[四智]를 이루니 오법이 이미 원만해짐에 따라 삼신(三身)이 이에 구비된다. 이러한 ‘인’[六行]과 ‘과’[五法]는 경과 지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경과 지는 둘이 아니라 오직 일미(一味)니, 이러한 일미의 관행(觀行)으로 이 경의 종지로 삼는다. 그러므로 대승의 법상(法相)이 포괄되지 않는 것이 없고, 셀 수 없는 종요(宗要)가 여기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으니, ‘이름이 헛되이 일컬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미의 관행을 종합적으로 논하여 대략 서술하면 이와 같다고 하였다.
또 원효는 ‘전개해서 설명하면 열 가지의 법문이 종지가 된다’고 한 것은 일문(一門)으로 점차 십문(十門)에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고 하였다.
일문이란 일심(一心) 가운데에서 일념(一念)이 움직여 일실(一實)을 따라서 일행(一行)을 닦아 일승(一乘)에 들어서 일도(一道)에 머물러 일미(一味)를 깨닫는 것이다. 이문(二門)이란 차안과 피안[二岸]에 머무르지 아니하여 도중과 속중[二衆]을 버리고 인아와 법아[二我]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중도를 떠난 두 극단[二邊]을 떠나며, 인공과 법공[二空]에 통달하여 성문승과 보살승[二乘]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진제와 속제[二諦]를 함께 융합하여 교리의 사유와 교법의 실천[二入, 理入/行入]에 어긋나지 않는다. 삼문(三門)이란 스스로 삼신불(三佛)에 귀의하여 세 가지 계[三戒]를 받으며, 세 가지 진리[三大諦]를 좇아 공(空)·무상(無相)·무작(無作)의 세 가지 해탈(三解脫)과 등각의 삼지(三地)와 묘각(妙覺)의 삼신(三身)을 얻고, 세 가지 공취[三空聚]에 들어가서 욕유·색유·무색유[三有心]를 없애는 것이다.
사문(四門)이란 네 가지 부지런한 노력[四正勤]을 닦고 네 가지 신통의 작용을 이끌어 내는 행법[四神足]에 들어가며, 네 가지 큰 인연의 힘으로 네 가지 위의[四儀]가 항상 예리하며, 네 가지 근본 선정[四禪]을 초월하여 네 가지 비방[四謗]을 멀리 떠난 네 가지 광대한 원[四弘地] 가운데서 네 가지 지혜[四智]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오문(五門)이란 오음(五陰)에서 생겨나서 오십 악을 갖추었기 때문에 다섯 가지 무루근[五根]을 심고 다섯 가지 힘의 작용[五力]을 길러 다섯 가지 공성[五空]의 바다를 건너고 다섯 등급의 지위[五等位]를 넘어서 다섯 가지 깨끗한 법[五淨法]을 얻고 다섯 갈래 유정이 태어나는 갈래[五道]의 중생을 제도하는 것 등이다.
육문·칠문·팔문·구문에서는 여섯 갈래 유정이 태어나는 갈래[六道]를 온전히 닦아서 여섯 가지 감각 기관[六入]을 영구히 제거하며, 일곱 가지 법으로 보리지혜를 열어가는 행법[七覺分]을 행한다. 이리하여 지수화풍 사대와 오온·십이처·십팔계 삼과[七義科]를 없애고, 여덟 가지 의식[八識]의 바다가 맑아지고, 아홉 가지 의식[九識]의 흐름이 깨끗해지는 것이라고 낱낱이 설명한다.
처음 십신에서부터 십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행업[百行]이 만족하게 갖추어지고 만덕이 원만한 것이니, 이러한 여러 문이 이 경의 종지가 된다. 이것은 모두 경의 글에 있으니, 그 글이 나오는 곳에서 설명할 것이다. 그런데 이 뒤의 아홉 문은 모두 일문에 포함되고, 일문에 아홉 문이 있으니, 일미의 관행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전개하여도 하나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종합하여도 열에서 더 줄어들지 않으니,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 이 경의 종요다."라고 말하고 있다.
‘종요’는 법화학과 삼론학에서 써 왔지만, 원효가 즐겨 사용하여 그 의미를 심화·확장시킨 개념이다. 원효는 『대혜도경종요』, 『법화경종요』, 『화엄경종요』, 『무량의경종요』, 『무량수경종요』, 『열반경종요』, 『미륵상생경종요』, 『유마경종요』, 『능가경종요』, 『범망경종요』, 『광백론종요』, 『삼론종요』, 『중관론종요』, 『장진론종요』, 『성유식론종요』, 『보성론종요』, 『대승기신론종요』 등 자신의 여러 경론 주석서에 ‘종요’라는 이름을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종요’ 개념의 사용은 이후 태현의 저술인 『범망경(보살계본)종요』, 『유가계본종요』에서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