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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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지명
삼국시대의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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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의 성.
내용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672년 8월 당군은 한시성과 마읍성(馬邑城)을 점령하였다. 한시성의 구체적인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한시성과 함께 등장하는 마읍성은 마읍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당서(新唐書)』 고려전에 따르면, 661년 당의 장수 소정방이 패강(浿江: 지금의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마읍산을 탈취한 후 평양을 포위하였다. 마읍산(성)은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대동강 북안의 장소로 추정되고 있어, 한시성도 평양 서남쪽에 위치한 성곽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당군은 671년 무렵 평양에 주둔하고 있다가 672년 8월부터 공세를 시작하여, 한시성과 마읍성을 점령한 후 남하하여 신라군과 대치하였다. 이후 신라는 석문(石門: 황해도 서흥군 서흥면) 전투에서 당군에게 크게 패하고 만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당서(新唐書)』
『국역 삼국사기』(이병도, 을유문화사, 1996)
「新羅と小高句麗國」(村上四男, 『朝鮮學報』 37·38,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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