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고모자 ()

의생활
의복
개항 이후, 남자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여름용 모자.
이칭
이칭
맥고모(麥藁帽)맥고자(麥藁子)
속칭
일자모(一字帽)
의복
재질
밀짚, 보릿짚
제작 시기
개항기 이후
소장처
국립민속박물관
내용 요약

맥고모자는 개항 이후 남자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여름용 모자이다. 이는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이고, 넓은 의미로는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모자 일반을 맥고모자로 칭한다. 맥고(麥藁)는 밀짚이나 보릿짚을 뜻하고, 맥고모자는 그 줄기로 제작하였다.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 형태는 모자 위 정수리를 덮는 부분이 평평하고 납작하며, 모자의 관 부분과 챙이 만나는 바로 위에 리본이 둘려져 있다. 넓은 의미의 맥고모자는 형태가 다양하다.

정의
개항 이후, 남자들이 주로 착용하였던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여름용 모자.
형태 및 용도

맥고모자(麥藁帽子)주1는 좁은 의미로는 개항(開港) 이후 남자들이 주로 썼던 주3로 만든 모자이고, 넓은 의미로는 밀짚이나 보릿짚으로 만든 모자 일반이다. 맥고는 밀짚이나 보릿짚을 뜻하고, 맥고모자는 그 줄기로 제작하였다.

좁은 의미의 맥고모자 형태는 모자 위 정수리를 덮는 부분이 평평하고 납작하며, 모자의 관 부분과 주5이 만나는 바로 위에 리본이 둘려져 있다. 원래 단색이나 줄무늬가 있는 그로스그레인(grosgrain)으로 된 리본이 달려 있었으나 후에 다양한 소재의 리본이 부착되었다. 모정(帽頂)이 평평하여 ‘일자모(一字帽)’라고도 하였다. 주4에 비하여 챙이 좁고 모자의 윗부분이 낮다. 맥고모자의 챙은 대개 일자형으로 알려져 있으나 챙의 형태가 다른 것도 있다. 따라서 넓은 의미의 맥고모자는 형태가 다양하다.

변천 및 현황

초기에는 짚을 표백하고 그 후에 짚을 뻣뻣하고 납작하게 만들어서 손으로 엮어 짰고, 짚을 표백한 후에 염색을 하기도 하였다. 1908년(융희 2) 신문 기사에 내부대신(內部大臣) 송병준(宋秉畯)이 인민을 일제히 단발케 하기 위하여 맥고자 몇 만 개를 일본에 주문하였다는 말이 있다더라는 기사 내용으로 20세기 초기에는 맥고모자를 일본에서 수입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1908년 모자 제조 농공연구회(農工硏究會)를 설립하고 우선 주6를 다수 제조한다는 기사가 있으나 자세하게 알 수는 없다. 주7의 수요가 많아진 후에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1924년에는 주2, 주8에게 맥고모를 씌우기 위해 맥고모자를 제조하는 중이라는 기사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맥고모자는 19세기 말에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1939년 기사에 맥고모자는 본정통(本町通)에 살던 일본인이 많이 쓰던 것이었고 조선 사람은 쓰지 않았던 것인데, 1909년(융희 3)경 임병삼(林炳三)이라는 조선인이 처음 썼다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1900년대 초에는 조선 사람들은 맥고모자를 즐겨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맥고모(麥藁帽)는 단발령(斷髮令) 추진과 일진회(一進會)를 떠올리게도 한다. 1904년(광무 8) 일진회 회원이 머리를 자르고 맥고모자와 모시로 된 두루마기를 입었고, 1907년(융희 1)에는 농부의제실시(農部衣制實施)에 관하여 양복을 아직 구하지 못한 관원은 머리를 자르고 맥고모자만 착용하도록 하였다. 이후 의관(衣冠) 개량에 대한 의견에서 주10는 일본맥고자(日本麥藁子)와 비슷하게 제조하자는 내용이 등장하며, 두루마기에 맥고자를 착용하고 길에서 주9 다니는 이들은 일진회원이라는 기사와 더불어 일진회원들이 단발령을 따르고 두루마기에 주11, 주12, 맥고모를 착용할 경우 일반인이 일진회라고 지적하고 미움을 받더라도 계속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 등이 있다.

1915년 기차역에 두루마기를 입고, 맥고모자를 쓴 청년들이 여럿 등장한 신문 기사가 있다. 맥고모자가 당시에 널리 유행하지는 않았더라도 1900년대에 비하여 착용 범위가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그후 맥고모는 파나마모자와 더불어 1919년 고종 주13국상(國喪) 기간 동안 백립(白笠) 대신 착용되었고 이후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여름에는 맥고모자와 파나마모자가 많이 착용되었다. 맥고모가 널리 착용된 이후에는 맥고모자의 가격, 유행, 세척 및 관리에 대한 내용이 일반인에게 소개되었다.

의의 및 평가

맥고모는 단발령 이후 머리가 짧아지면서 모자를 착용해야만 하였던 상황에서 강요되기도 하였고, 단발령을 강요할 때 일진회원들이 먼저 썼던 것으로 일진회원들과 관련된 나쁜 인상도 지울 수 없으나 고종 국상 이후 여름에 널리 착용되었던 모자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유희경·김문자, 『한국복식문화사』(교문사, 1998)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의식주생활사전 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17)

논문

김이든, 『개항 이후 남자 모자에 관한 연구』(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7)
남경미, 『한국 남자 일반 복식에 관한 연구: 개항 이후 광복까지』(서울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인터넷 자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https://stdict.korean.go.kr/main/main.do)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아카이브(https://www.nl.go.kr/newspaper/)

기타 자료

『매일신보사』(1915.07.17.)
홍선표, 「양복의 기원: 양복은어느때누구의손으로만드린 것」(『조광』, 조선일보사출판부, 1939)
주석
주1

맥고로 만든 모자. 개화기에 젊은 남자들이 주로 썼다. 우리말샘

주2

우편물의 체전에 종사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3

밀짚이나 보릿짚. 우리말샘

주4

파나마모자풀의 잎을 잘게 쪼개어서 만든 여름 모자. 우리말샘

주5

모자 끝에 대서 햇볕을 가리는 부분. 우리말샘

주6

맥고로 만든 모자. 개화기에 젊은 남자들이 주로 썼다. 우리말샘

주7

맥고로 만든 모자. 개화기에 젊은 남자들이 주로 썼다. 우리말샘

주8

여러 가지를 모아서 배달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9

뜻한 바를 이룬 만족한 빛을 얼굴과 행동에 나타내는 면이 있다. 우리말샘

주10

예전에, 어른이 된 남자가 머리에 쓰던 의관의 하나. 가는 대오리로 갓양태와 갓모자를 만들어 붙인 위에 갓싸개를 바르고 먹칠과 옻칠을 한 것인데 갓끈을 달아서 쓴다. 우리말샘

주11

꼭대기의 가운데를 눌러쓰는, 챙이 둥글게 달린 신사용의 모자. 우리말샘

주12

꼭대기가 둥글고 높은 서양 모자. 예장용은 검은색, 승마용ㆍ산책용은 회색 또는 밤색이 보통이다. 우리말샘

주13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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