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양복 ( )

의생활
의복
문화재
일제강점기 이후,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유림이 착용한 양복.
의복
재질
모, 아세테이트 등
제작 시기
1958~1961년
소장처
독립기념관
국가등록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소재지
충청남도 천안시
내용 요약

유림 양복은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유림(본명 유화영)이 착용한 양복이다. 독립운동가의 의복이며,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초기 국산 모직물과 플라스틱 단추 등 현물로서의 가치와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중산복 유형의 복식이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에 ‘신생활복’을 거쳐 1961년 제정된 표준 간소복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어 이 양복은 우리나라 현대 남성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정의
일제강점기 이후,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인 유림이 착용한 양복.
연원

유림(柳林)이 착용했던 의복으로 독립기념관에 소장하고 있다. 유림은 어릴 때 유화종(柳花宗)이란 이름을 쓰다가 1919년 항렬에 맞추어 유화영(柳華永)으로 개명하였다. 호를 월파(月波) ‧ 단주(旦洲)로 쓰고, 이명(異名)으로는 고상진(高尙眞) ‧ 고자성(高自性) 등으로도 불렸다. 활동 후반기에 단주라는 호가 주로 사용되었다.

형태 및 용도
  1. 상의

상의의 뒷길이는 73.5㎝이고, 품은 53.5㎝이며, 소매 길이는 58㎝이다.

유림 양복 상의의 겉감은 청회색 모직물(毛織物), 안감은 주2이다. 단추 5개로 여몄고, 스탠드 앤드 폴 칼라(stand and fall 주3가 달렸으며, 칼라 안쪽에는 보조 칼라를 달기 위한 고정용 주1 5개가 달려 있다. 앞길 양쪽 가슴에 덮개[flap]가 있는 패치 포켓(patch 주4이 달려 있고, 양쪽 허리에 엔벨로프 포켓(envelope 주5이 달려 있다.

왼쪽 안주머니 위에 황색 실로 유림의 호(號)인 ‘旦洲(단주)’를 수놓았다. 오른쪽 안주머니 위에는 ‘대구시 중앙통 시민양복점(市民洋服店)’이라는 주6이 붙어 있다. 이 라벨은 주7에 압인(壓印)한 것이다. 주8 안쪽에 양복점의 상호와 주소가 붉은색 도장으로 찍혀 있는 가죽 심지가 있다.

  1. 바지

바지의 길이는 104㎝이고, 허리는 45㎝이다.

바지는 앞면 좌우에 각각 2개씩 주름(tuck)이 있고, 밑단이 4㎝ 접어 올려져 있다. 주9를 사용할 수 있도록 단추가 허리 밴드 안쪽 좌우에 2개씩 4개 달려 있다. 앞 중심 허리 단추는 단춧구멍이 아닌 단춧고리로 고정하게 되어 있다. 지퍼 대신 ‘PUSAN SIN-HUNG’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단추 5개로 여몄다. 바지 밑단, 옆선, 옆 주머니 양쪽의 주10 부분에 ‘ALL WOOL “ORIENTAL TEX” DONGYANG KOREA 500’이라는 글자가 제직(製織)된 주11가 있다.

유림 양복을 만든 대구시 중앙통의 ‘시민양복점’은 서문시장과 인접한, 오늘날의 대구 중앙대로(中央大路) 일대에 위치한 것으로 짐작된다. 유림 양복을 제작한 주12는 1950년 부산에서 설립된 ‘동양실업’(지금의 ‘태광산업’)이 1958년에 만든 첫 자체 양복지 브랜드였다. 동양실업의 설립자 이임용(李壬龍, 1921~1996)의 지시로 양복지 식서에 오리엔탈 텍스의 영문명을 새겨 넣었다고 전한다.

변천 및 현황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던 유물이 보존 처리를 위해 2017년 3월에 국립 문화재 주13에 맡겨졌다. 국립 문화재 연구소의 문화재 보존 과학 센터에서 2018년 4월부터 1년여 동안 보존 처리를 하였고, 이후 독립기념관에 소장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유림 양복은 주16 주17의 의복이며,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초기 국산 모직물의 현물로서의 가치와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자료이다. 유림 양복은 주14 유형의 주15이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에 ‘ 신생활복’을 거쳐 1961년에 제정된 ‘ 표준간소복’과 같은 형태로 지속되어 우리나라 현대 남성복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근·현대 문화유산 의생활 분야 목록화 조사 연구 보고서』(문화재청 근대문화재과, 2012)
『2014년도 등록문화재 등록 조사 보고서』(문화재청, 2015)

논문

이량미·안보연, 「국가등록문화재 제609호 유림 양복 보존처리와 제작 시기 고찰」(『한국의류학회지』 45-4, 한국의류학회, 2021)

인터넷 자료

안보연, 「3.1운동 100주년, 보존처리로 되살아난 독립운동가의 복식」(문화재보존과학센터 보도자료, 2019.02.28.)(https://www.nrich.go.kr/buyeo/boardView.do?menuIdx=283&bbscd=33&bbs_idx=41182)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기타 자료

「2022년 6월 30일 기준 국가등록문화재 총괄 현황표」(문화재청)
안보연, 「독립운동가 단주 유림의 양복」(『월간문화재사랑』, 2019.03.04.)
주석
주1

수단추와 암단추를 눌러 맞추어 채우는 단추. 주로 쇠붙이로 만든 단추로, 채우거나 뺄 때에 똑딱 소리가 난다. 우리말샘

주2

셀룰로스 분자 속의 하이드록시기를 아세틸화한 아세트산 에스터. 섬유소에 아세트산 무수물, 진한 황산을 섞어서 만든다. 방사하여 아세테이트 섬유를 만들거나 불연성 필름, 플라스틱, 전기 절연체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쓰인다. 우리말샘

주3

와이셔츠의 깃처럼 세운 옷깃에 받침 부분이 달려 접힌 옷깃.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우리말샘

주4

옷 위에 따로 천을 대어 붙인 주머니. 만들기 쉽고 실용적이어서 가볍고 경쾌한 복장에 많이 사용된다. 우리말샘

주5

옷 위에 천을 덧붙여 만든, 뚜껑이 달린 주머니. ⇒규범 표기는 미확정이다. 우리말샘

주6

종이나 천에 상표나 품명 따위를 인쇄하여 상품에 붙여 놓은 조각. 분류 번호, 취급상의 주의 사항, 제품의 크기, 가격 따위를 써넣기도 한다. 우리말샘

주7

유기 화합물의 합성으로 만들어진 수지 모양의 고분자 화합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폴리염화 비닐ㆍ폴리에틸렌 따위의 열가소성 수지와, 페놀 수지ㆍ요소 수지 따위의 열경화성 수지가 있다. 우리말샘

주8

어깨선에서 겨드랑이까지의 폭이나 넓이. 우리말샘

주9

허리나 가슴 윗부분의 바대에 연결하여 어깨에 걸치는 끈. 우리말샘

주10

옷 솔기 가운데 접혀서 속으로 들어간 부분. 우리말샘

주11

올이 풀리지 않게 짠, 천의 가장자리 부분. 우리말샘

주12

양복을 지을 옷감. 우리말샘

주13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있는 문화유산 관련 종합 연구소. 문화재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각종 조사, 연구, 개발 업무 등을 맡아본다. 1969년에 설립된 문화재 관리국 산하 ‘문화재 연구실’이 그 전신이며, 1973년에 ‘문화재 연구 담당관실’로, 1975년에 ‘문화재 연구소’로 개편되었다. 1995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문화재청 산하 기관이다. 우리말샘

주14

쑨원이 고안한 중국 의복으로 인민복 또는 마오룩(Mao look)이라고도 한다. 중국의 정치가 쑨원[孫文]이 일상생활에 편리하도록 고안한 옷이다. 쑨원의 호인 중산(中山)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1929년에 중국국민당에서 국가의 공식 예복으로 지정하였다.

주15

옷의 꾸밈새. 우리말샘

주16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움. 우리말샘

주17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여러 가지 민족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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