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교복 ( )

의생활
의복
근대, 대학생이 착용하던 제복.
의복
재질
면, 모직, 나일론 등
제작 시기
일제강점기의 대학교 입학 시기
내용 요약

대학생 교복은 근대에 대학생이 착용하던 제복이다. 1880년대 근대 교육 기관 설립 초기에는 한복을 착용하였고, 배재학당에서 처음으로 양복 교복을 도입하였다. 대학생 교복은 중 · 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하나 모자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등보통학교까지는 학생들이 둥근 모자를 착용하였고, 대학생은 사각형 모자를 착용하였다. 1920년대에 남학생 교복은 양복화되었고, 여학생 교복은 1930년대에 양복화되었다. 1940년 대학생 교복이 전시복 차림으로 변화하였다.

정의
근대, 대학생이 착용하던 제복.
내용

개항(開港) 이후 1880년대에 정부가 설립한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 1885),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 1885), 의학교(醫學校, 1899) 등의 교육기관은 일제의 강제 병합 이후에는 강제 폐교 · 통합되고, 전문학교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배재학당(培材學堂, 1885), 이화학당(梨花學堂, 1886), 숭실학당(崇實學堂, 1897),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1915),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1905)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으나 이러한 사립 학교들은 일제강점기에 사립학교 탄압과 고등교육 억제 정책으로 인하여 전문학교에 머물렀다. 그 결과 1945년에 조선의 서양식 연구 대학은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1924)이 유일하였다.

대학생 교복은 중 · 고등학교 교복과 비슷하나 모자에서 차이를 보였다. 고등보통학교까지는 학생들이 둥근 모자를 착용하였고, 대학생은 사각형 모자를 착용하였다. 사각모의 네 모서리는 중세시대에 대학을 이끌었던 네 가지 학문, 곧 철학 · 법학 · 천문학(신학) · 의학을 상징하였다.

형태 및 용도

1910년대까지 대학생 교복은 주로 한복이었다. 대학생들은 바지저고리 또는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를 입거나 쓰개치마나 장옷을 썼다. 1910년대 이화학당 대학부의 학생들은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배재학당은 1898년(광무 2) 당시 일본의 학생복을 도입하여 스탠드 주4가 달린 검은 양복(洋服)에 주1를 착용하였는데, 밑단, 소매단, 바지 좌우의 겉 주5, 주10에 태극(太極)을 상징하는 청홍선(靑紅線)을 둘렀다. 단발령(斷髮令) 이후 차츰 한복을 입고, 깎은 머리에 주6를 단 학생모를 쓰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까지 여학생 교복은 대개 한복이었고, 1920년대에 남학생 교복은 양복화되었다. 1920년경에는 여러 학교에서 검정색 짧은 통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게 하고 주2주3는 벗게 하였다. 길이가 짧은 통치마를 입게 되자 버선과 고무신 대신 양말과 구두를 신게 되었다. 속옷에도 변화가 생겨 속저고리과 속바지 대신에 속셔츠, 팬티, 주7, 속치마를 입게 되었다. 1920년대의 남학생 교복은 여름에는 흰색 또는 회색, 겨울에는 검은색 주11을 사용하여 스탠드 칼라에 앞 단추를 다섯 개 단 형태로, 근래까지 착용된 형태이다. 1920년대의 숭실 · 보성 졸업 앨범에 있는 학생들은 대개 양복 교복을 착용하고 겨울에는 대개 그 위에 코트를 착용하였다.

1930년대에 일제는 여학생 교복을 양장(洋裝)으로 개정하여 한복 교복을 착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1935년 이화여자전문학교(梨花女子專門學校)의 교복은 재킷, 블라우스, 치마 등이었다.

변천과 현황

1940년대에는 교복도 전시복(戰時服) 차림이 되었다. 여학생은 여름에는 블라우스에 바지나 ‘ 몸뻬’라는 작업복 바지를 입었고 겨울에는 재킷에 몸뻬를 입었다. 남학생은 국민복 같은 주9 교복에 주8을 쳤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 앨범에서 양복 교복을 입은 윤동주(尹東柱)와 국민복 같은 교복에 각반을 친 윤동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국방색 교복과 각반, 전투모, 몸뻬 같은 교복은 사라졌다.

참고문헌

단행본

국립민속박물관, 『한국 의식주 생활 사전 의생활』(국립민속박물관, 2017)

논문

박경자, 「일제침략기의 복식연구」(『한국복식논고』, 신구문화사, 1983)
박정수 외, 「한국 개화기 여학생 교복의 변천과정」(『가정학연구』 9, 명지대학교, 1997)
이민정, 『복식과 이데올로기: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기를 중심으로』(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인터넷 자료

고려대학교박물관 디지털아카이브(https://archives.korea.ac.kr:444/cybr/exbt/plan/plan_10.jsp)
신여성문화-교복 변천사(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2004)/검색 안 됨/
서울의대 역사스케치(https://webzine.medicine.snu.ac.kr/201706/menu6.html)
숭실대학교 학교소개(https://ssu.ac.kr/%ed%95%99%ea%b5%90%ec%86%8c%ea%b0%9c/%ec%97%ad%ec%82%ac/%ec%88%ad%ec%8b%a4-%e5%8f%b2/)
의학역사문화원(http://dept.snuh.org/dept/HHCC/bbs/photo2View.do?menuId=003014028&cid=11041&pageIndex=1)
인천일보 1928 문우회 사진(https://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495373)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관 구글 아트 앤 컬쳐(https://artsandculture.google.com/search/asset/?p=yoon-dongju-memorial-hall&em=m06qd3&categoryId=place)
이화여자대학교 역사(http://ewha.ac.kr/ewha/intro/history02-2.do)
한경직목사기념사업회: 사진으로 보는 여정(http://hankyungchik.org/Home/bbs/page.php?hid=photolifetime)
주석
주1

학교, 관청, 회사 따위에서 정하여진 규정에 따라 쓰도록 한 모자. 우리말샘

주2

예전에, 여자들이 나들이할 때에 얼굴을 가리느라고 머리에서부터 길게 내려 쓰던 옷. 초록색 바탕에 흰 끝동을 달았고, 맞깃으로 두루마기와 비슷하며, 젊으면 청ㆍ녹ㆍ황색을, 늙으면 흰색을 썼다. 본래는 여성들의 겉옷으로 입다가 양반집 부녀자들의 나들이옷으로 변하였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새색시의 결혼식 예복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우리말샘

주3

예전에, 부녀자가 나들이할 때, 내외를 하기 위하여 머리와 몸 윗부분을 가리어 쓰던 치마. 우리말샘

주4

옷깃 모양의 하나. 중국옷처럼 목둘레의 깃이 세워져 있다. 우리말샘

주5

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지을 때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줄. 우리말샘

주6

학교를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 우리말샘

주7

여성용 바지의 하나. 1850년경 뉴욕의 블루머 부인이 고안한 것으로, 짧은 스커트가 달리고 발목을 매게 되어 있어 한복 바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우리말샘

주8

걸음을 걸을 때 발목 부분을 가뜬하게 하기 위하여 발목에서부터 무릎 아래까지 돌려 감거나 싸는 띠. 우리말샘

주9

육군의 군복 빛깔과 같은 카키색이나 어두운 녹갈색. 우리말샘

주10

학교, 관청, 회사 따위에서 정하여진 규정에 따라 쓰도록 한 모자. 우리말샘

주11

목화솜으로 만든 실로 짠 천.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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