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사측이 2011년 1월 12일 희망퇴직 거부 생산직 290명에 정리해고를 통보하였고, 같은 달 19일 크레인 시위자 등에 1억 원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자 2월 14일 노조 간부 2명이 추가로 크레인 시위에 돌입하였다. 이에 사측도 직장 폐쇄를 단행해 사태가 악화되었다.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 지원 운동인 희망버스는 2011년 6월 11일 시민 사회 원로와 활동가들 등 총 750여 명을 태운 ‘1차 희망버스’가 한진중공업 고공 농성장을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같은 해 7월 9일 약 1만 명의 ‘2차 희망버스’ 190대가 정동영 민주당(民主黨) 최고위원과 유시민 국민참여당(國民參與黨) 대표 등 야당 인사들과 함께 한진중공업을 방문하였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도로 무단 점거 등 폭력 시위로 변질되었다며 최루액으로 시위대 진압을 시도하였다. 같은 해 7월 30일 1만여 명의 ‘3차 희망버스’ 방문이 있었다.
사태 해결을 위해 같은 해 8월 3일 야당은 청문회(聽聞會) 개최 등과 관련한 5개의 공동 합의문을 발표하였고, 같은 달 11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회 청문회 개최에 합의하였다. 8월 18일 최남호 회장과 박유기 금속 노조 위원장 등 6명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국회 청문회가 개최되었으나 조회장은 사측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였다. 국회는 해고 노동자 94명을 1년 뒤 재고용할 것 등의 권고안을 제안하였고 11월 10일 노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사태는 해결되었다. 김 지도 위원과 사수대(死守隊) 3명도 농성을 해제하였다.
희망버스는 2011년 11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연인원 38,000여 명이 참여한 노동권(勞動圈)과 시민 사회의 연대운동을 보여 주었다. 노사 문제에 외부 세력 개입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점에서 하나의 노동운동(勞動運動)의 선례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이 사태의 촉매제였던 김진숙은 2022년 2월 25일 한진중공업의 계승 기업인 HJ중공업에 복직하였고 당일 명예퇴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