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부산에서 출생한 이상희(李祥羲)는 부산고등학교를 다니다 병을 얻어 중퇴한 뒤, 검정고시로 서울대학교 약대에 입학해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동아제약의 연구 개발 본부에 근무하면서 특허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73년에는 변리사(辨理士) 자격증을 획득하였다. 이후 미국 조지타운 대학(Georgetown University) 로스쿨에서 미국 특허청 심사관(審查官) 과정을 수료한 후 서울상공회의소 상담역과 특허협회 전문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1981년 민정당(民正黨)의 과학기술 분야 전문 의원으로 선발되면서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상희의 형은 유정회(維政會) 의원을 지낸 유신 언론인 출신 이진희이다. 이진희는 1980년 경향신문 사장과 입법회의 의원을 역임하고, 1981년 MBC 사장을 거쳐 1982년에는 제24대 문화공보부(文化公報部) 장관을 지냈다.
이상희는 2020년 이후 대한민국 국가과학기술헌정자문회(國家科學技術憲政諮問會) 의장으로 ‘과학의 전당’ 설립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추진하다가 2023년 9월 13일 별세하였다.
이상희는 정치에 입문한 직후부터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 과제 발굴과 정책 입안에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상희는 국회의원으로 재임한 기간 동안 100여 건이 넘는 법안에 참여하였으며, 그 중 과학기술 관련 법안은 약 60여 건에 이른다. 가결된 법안으로는 「유전 공학 육성법」, 「대체 에너지 개발 촉진법」, 「뇌 연구 촉진법」, 「이 러닝 산업 발전법」, 「항공 우주 산업 개발 촉진법」 등 첨단 과학기술 분야를 효율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특별법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1988년 과학기술처(科學技術處) 장관으로 임명된 이상희는 1989년을 ‘기초과학진흥의 원년’으로 선포하고 「기초 연구 진흥법」의 제정과 함께 기초 과학(基礎科學) 분야의 연구비를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전국 대학에 우수 연구 센터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대학의 방대한 연구 잠재력을 체계화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2002년에는 ‘과학경제 대통령’을 내세워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으나 탈락하였다. 정계를 떠난 뒤에는 대한변리사회 회장, 한국과학발명영재단 이사장,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말년에는 녹색삶지식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맡아 소형 원자력 발전소 도입과 개발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이상희의 대표적인 정책 개발 보고서로는 『금세기 최후의 혁신기술 유전공학 기술개발 방향수립』(1982)이 있고, 그의 대표 저서로는 『꼴찌 과학 대통령』(2003), 『대한민국의 미래 과학두뇌가 희망이다』(2008), 『대통령 생각 요리법』(2017), 『기적은 1%의 영감과 99%의 감성』(2020)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진흥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에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